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2호 영화
‘사랑의 행위’가 무엇인지 새삼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시와 / 영상미디어 활동가   fjt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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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포르노 행위였어요.”
영화의 한장면


거리를 부유하는 흐릿한 사람들로부터 차분히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로 카메라는 이동한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오롯이 남아있을 때, 솔직하게 과거를 대면하며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정상적이라 불리는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쉽사리 감행할 수 없었던 성적 환타지를 실현코자 섹스파트너로 만난 ‘익명’의 두 여남.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는 몇 개월 동안 만남을 지속하면서 생활의 외피 뒤에 불안하게 메워져왔던 내밀한 관계에 대한 욕망을 발견하게 된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관계의 변화와 상호소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특히 현재 인터뷰이로 각각 자리하게 된 두 여남의 진술과 그들이 회상하는 만남부터 헤어짐에 이르는 물리적, 심리적 시간의 추이를 포개어 놓으며, 카메라의 위치와 역할을 성찰하는 동시에 다큐멘터리적 진실성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문제제기한다.

“영화속의 섹스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다.”

손잡기→포옹→키스→애무→섹스… 두 주인공은 정신적 관계의 깊이에 상응하여 달라진다고 통용되는 스킨십의 단선적인 단계 따위를 거부한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 관한 호감도와 성적인 선호도를 둘러싼 짧은 대화를 마친 후, 붉은 빛이 감도는 호텔 복도로 향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이 들어간 방문 앞에서 굳게 멈춰선다. 섹스에 뒤이어 예상치 못한 편안한 대화를 나누게 된 그들은 가까워진다. 이름, 직업 등 각자의 사적인 정보를 감춘 상태였지만 어느새 무수히 스치는 인파 속에서 그녀만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찾아들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허물어진 채 익숙함이 스며든다. 더불어 어색함이 사라진 호텔 방안에서 친밀함이 가득한 섹스를 나누는 그들을, 카메라는 길게 비춘다.

상대방을 새기게 되는 첫 과정으로 머뭇거림이 감지되는 섹스, 불안함과 그리움의 강을 건너 이루어진 해후 뒤의 격렬한 키스, 은밀함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미세한 신체의 움직임, 솔직한 마음과 몸의 고백 뒤에 맞게 된 환희와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하는 섹스. 영화는 정신적, 육체적 관계에 대한 유난스러운 우선순위를 매기지는 않지만, 육체적 관계의 맺음으로 문을 연 정서의 교감이 육체적 관계에 주는 영향을 포착한다. 또한 감독은 가시적인 관계가 종료된 후, 카메라 앞에서 ‘편집된’ 기억을 가감을 섞어, 때론 가감 없이 읊조리는 두 여남의 서로 다른 회상을 이야기축으로 설정한다. 이 같은 회상은,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말하는 두 여남의 심리를 관계의 거리감에 따라 관찰자적인 응시와 깊숙한 클로즈업을 반복하는 카메라의 시선과 겹쳐지면서 중첩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둔다.

“그건 사랑의 행위였어요.”
영화의 한장면

변형된 기억에는 필시 이유가 있다. 만남의 계기, 횟수 등에 관한 인터뷰어의 질문에 응한 두 여남의 상이한 답변은, 불특정한 다수에게 ‘사실’을 숨김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고픈, 과거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감독은 극중 인물을 인터뷰이로 자리에 앉히면서 과도한 줌인아웃을 반복하는데, 이같은 설정은 영화에 객관성과 진실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는 동시에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묘한 인위성, 양면적으로 촉촉한 눈매와 담백한 속내를 이끌어내는 카메라의 힘을 시사한다. 또한 카메라 앞에서 서서히 마음을 여는 여성과 구체적인 성행위에 대한 묘사를 함구하려는 남성의 태도를 은근하게 대조시키면서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불리는 사회적 통념에 입각한 차이에 대해서도 말하려는 듯 하다. 그렇지만 두 인물이 복잡한 감정의 줄다리기가 오가는 가운데 ‘사랑’이라는 명료한 해답이 다가오는 순간을 회상하는 인터뷰 장면에서, 감독은 짧은 호흡으로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동일한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을 교차편집하며, ‘사랑’의 묵직함이 남긴 관계의 여운을 표현한다.

결국 등을 돌리게 된 두 사람에게서 벗어난 카메라는 영화의 오프닝과 마찬가지로 거리를 부유하는 흐릿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맺는다. 사랑의 기억을 한 꺼풀 덧입은 그들이 혹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상처가 두려워 그저 똑같은 ‘실수’로 관계를 끝맺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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