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2호 기획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

김현우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nuovo90@hanmail.net
조회수: 5635 / 추천: 77
한국 사회에서 전자 노동감시의 영역이 대폭 확장되어 노동인권과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노동자들은 별다른 대응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다. 이와 관련한 갈등과 노동자들의 저항도 빈발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가십거리 이상이 아니고, 대응 역시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2005년 7월부터 12월까지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했다. 본 연구에서는 15개 사업장에 대하여 실지조사를 실시하여 국내 사업장의 전자 감시 시스템 설치와 운용 현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 설문을 통해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견을 파악하였다.

노조와 협의는 24% 불과

실지조사를 통해 살펴본 사례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우선 이미 잘 알려진 KT 상품판매팀, 삼성SDI, 하이텍 RCD 코리아처럼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이 전자감시 시스템을 통해 더욱 증폭된 경우들로, 사용자들은 CCTV에서 위치추적(GPS)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매우 전방위적인 감시를 행하고 그에 따른 갈등과 충돌도 격렬히 일어났다.
CCTV의 남용을 보여주는 사례에서 관리비용의 절감이라는 이점과 사회적 견제 장치의 부재 속에서 사용자 측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설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노동자 측에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을 업무에서 반드시 사용하게 되는 IT업종의 직원 감시는 그러한 규범과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더욱 광범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업종일수록 사용자의 경영권과 노동자 인권 사이의 대립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설정할 필요성이 크다.
전사적 자원관리프로그램(ERP)은 ‘전자 노동감시’를 위하여 개발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생산 자원의 효율적 통제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통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ERP의 사례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노동자의 대응 여하에 따라 기업 측의 도입 방식과 수위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개의 병원 사업장에서는 ERP 도입 저지 투쟁을 통해 유의미한 협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은행 콜센터의 전화 통화 녹취는 노사 상호간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이지만, 녹취의 범위와 이용의 범위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작업장에서의 갈등 가능성과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RFID 카드를 이용한 출입통제 시스템과 생체인식 시스템 역시 빠른 확산 속도에 비해 개인정보의 취득과 활용에 대한 기준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으로 해서 불필요한 노사 간 대립과 인격 침해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당 평균 2.36개의 감시 기술에 노출

설문조사에서는 노동자당 평균 2.36개의 전자 감시 기술에 노출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활용되고 있는 기술 중 가장 많은 것이 인터넷이용 모니터링이었고, 그 뒤를 전자신분증, ERP, CCTV, 컴퓨터 하드디스크 모니터링, 전화송수신 내역기록 등의 순이었다. RFID와 지문 및 생체인식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2003년 “노동자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인터넷 기술의 이용 확대가 관련한 감시 기술도 확대시켰음을 짐작케 한다.
각 전자기술별 도입비율
한편 직장에 설치된 전자기술이 노동자를 관찰,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인식한 노동자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를 제외하고는 26.1%였고, 업무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라고 본 응답자는 73.9%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업무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전자기술이 도입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4명 중 1명은 노동자의 감시가 주요 목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자기술이 도입될 때 노동자 개인이나 노동자의 대표기구에 전자기술의 설치여부와 장소활용방안 등을 고지한 비율은 약 20-30%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설치했거나 설치 후에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자 감시기술 설치 및 활용시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므로 노동자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2.6%에 불과하였고 적극적인 노동자의 참여(66.5%)나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다(21.1%)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전자 감시기술 설치 및 활용시 노동자 참여의 필요성

특별법과 단체협약 병행 활용 필요

다른 나라의 경우 사업장의 노동감시는 인권의 기본요소에 해당되는 프라이버시 또는 사생활의 일부를 침해하는 것인 만큼, 시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보다 근원적인 국제규범에서 출발하여 그 세부영역이라 할 수 있는 산업현장에서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낳은 감시활동의 규율에 관한 국제적인 행동준칙으로 발전해오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LO의 「노동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행동강령」이 있는데, 이는 강령의 성격상 회원국들에 대해 관련 입법이나 정책을 강제하는 구속력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각국에서 관련 법안․규제․단체협약․취업규칙․정책 및 기업차원의 경영수단을 마련함에 있어 참조되는 권고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사업장 감시의 규제에 대하여 매우 적극적인데, 2000년대에 와서는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더불어 95년의 EU지침을 고용관계에 적용하기 위한 활발한 연구와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개별 국가와 지방정부 수준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정보-프라이버시위원회는 정례적으로 의견서를 공표하여 시민사회와 산업현장에서의 감시행동을 규율하는 주 차원의 행위준칙을 제시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는 1998년에 작업장 비디오감시를 규제하는 “작업장비디오감시법”을 제정-시행한 데에 이어, 2005년 5월에 동법을 대체하여 컴퓨터감시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작업장감시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반면에 현재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은 사업장 감시에 관하여 직접적인 규율을 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일반적인 입법도 없는 탓에 구체적인 문제해결은 헌법상 기본권 해석론이나 미흡한 실정법에 의지한 해석론에 의하여 해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첫째, 사업장에 한정하는 프라이버시보호법을 만드는 것인데, 사업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법률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현재 프라이버시 일반에 대한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장에 대해서만 특별법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감시에 관한 일반 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의 적용범위에 사업장 감시도 포함하되, 노사관계에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특별규정을 두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이 일단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둘째, 노동관계법 특히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개인정보, 사생활 및 인격권의 보호에 관한 근거규정을 명시적으로 둘 필요가 있다. 또 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작업방식이나 감시장비의 도입과 관련된 사항을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의 필요적 기재사항 또는 노사협의회 의결사항으로 함으로써, 전자 노동감시가 이에 대한 규제입법과 함께 단체협약, 노사협의 및 취업규칙에 의하여 통제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운동 동력 되살려야 할 때

무엇보다 전자 노동감시는 그것이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든 노동과정 통제에 관한 것이든,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동안 자신의 노동력 제공을 계약한 것이지, 개인의 인격을 판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노동자 개인의 신상이나 근무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과다하게 수집하거나 활용하는 시스템에는 정보가 유출되거나 오용될 우려가 상존한다. 또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노조 탄압 도구가 되거나 노사간 갈등 유발요인이 된다는 점이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작업 중 감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느끼는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세나 우울증 같은 건강권 침해 문제도 제대로 살펴져야 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전자감시 시스템이 갖는 인권 침해와 노동권 침해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노사 모두에게 부족하다는 점을 전반적으로 드러내었다. 기업 측에서는 재산권과 기업 자원 보호라는 명목으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감시 시스템을 채용하며, 첨단 기술에 해당하는 것일수록 인격적 측면에 대하여 둔감한 경향을 보였다. 현행법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에 있어서도 전자감시 시스템이 제어받지 않은 가운데 남용되며, 중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지 않거나 미약한 사업장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도 오남용되고 있는 사업장 전자감시에 대하여 국가는 시급히 관계법령을 정비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언론에서도 노동현장에서 전자감시 시스템 설치․운용이나 개인 정보 활용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경제적 가치가 인권적 가치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자주 환기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대응 여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에 따라 사용자의 인식과 전자 감시 시스템의 도입의 활용 수위와 방식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2002년에 노동자 감시 관련 조항을 포함하는 “단체협약 모범안”을 작성 배포했음에도 왜 몇 년 새 단협에서 그다지 활용되지 못했는지, 극단적 노동인권 탄압과 연관된 사례가 발생한 다음에야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노동현장의 주체와, 정부, 시민사회 모두에게 노동현장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전자기술에 의한 정보수집 내용 인지수준
전자기술에 의한 정보 수집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거의 모른다’ 11.5%, ‘잘 모른다’ 57.5%로 전체 응답자 중 69%가 전자기술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수 없다고 응답하였다.
▶ 전자감시 기술 효과
전자감시 기술 효과 중 주로 노동계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측면(1~4점)과 관련해 ‘노동통제 강화’가 3.12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사생활 침해(3.11점), 노사불신 증대(2.98점), 인사상 불이익 발생(2.87점), 노조활동 저해(2.87점), 스트레스 등 건강악화(2.79점) 등이 뒤를 이었다.
▶ 회사의 노동자 관찰 및 감시에 대한 규제 필요성
감시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응답은 28.6%,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은 38.4%로 나타나,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67.0%가 공감하고 있었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