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2호 과학에세이
지도교수

이성우 / 공공연맹 사무처장   kamb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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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씨가 마침내 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그에 대한 최고과학자 지정도 취소되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언론은 끝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곧 새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업데이트되면 이른바 ‘황까’나 ‘황빠’들을 제외하고는 황우석씨를 망각의 저편에 묻게 되겠지. 요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여론의 선망을 받거나 집중적인 포화를 받거나 세월이 흐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황우석 사건에 관한 논란도 시나브로 잠잠해지고 있다. 과학자 사회에 대한 연구나 연구윤리에 관한 쟁점들은 전문가들의 연구주제나 토론꺼리로 계속 등장하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황우석 드라마는 일단 끝난 듯하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이 떠난 자리에서 후속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황우석씨를 지도교수로 삼았거나 프로젝트 책임자로 섬겼던 학생이나 연구원들이다. 황우석씨가 교수직을 사퇴할 때 배경화면으로 등장했던 그들이 이제는 제가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험난한 인생행로에 직면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공계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의 자리는 권력 그 자체이다. 지도교수가 생활습관부터 시작해서 논문, 취업, 해외연수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따라서 학위를 취득하는 기간이 달라지고, 심지어 교수의 필요에 따라 논문을 다 쓰고도 졸업을 미룬 채 더 일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연구계획서 작성, 연구비 지출에 관한 영수증 처리, 인건비의 편법 집행과 비자금 관리 등등,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수족이 된다.

연구실적은 변변하지 않았지만 난자를 제공한 보답으로 휘하의 연구원을 어떤 의과대학의 교수로 취직시킨 황우석씨의 ‘권력’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일에 몰두했을 학생과 연구원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잘못이 다 드러난 상황에서도 선뜻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지도교수를 편들고자 했던 가상한 용기로 여전히 황우석씨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을까? 새 지도교수에게 의탁하여 학위논문이나 빨리 끝내야지 하고 교수 연구실을 기웃거리고 있을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까? 혹시 단 한 사람만이라도 황우석씨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는 이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니 황우석씨에 대한 분노와 학생들에 대한 연민이 더욱 커진다.

새삼 내 지도교수를 기억한다. 평생 차를 몰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걸어서 출퇴근했다. 학생들을 속박하거나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모범을 보였고 학문적으로 엄정했다. 과도한 연구비에 욕심내지 않았고 한 푼의 장학금이라도 더 주려 애썼다. 이 땅에 이런 교수들 많다. 그 중에 누군가가 황우석씨를 거둬들여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면 이 어처구니없는 드라마가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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