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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년대에 시각장애인계에 회자되었던 상반된 두 가지 말이 있다. 컴퓨터가 시각장애인을 구원했다(The computer saved the blind.)와 컴퓨터가 시각장애인을 위험에 빠뜨렸다(The computer jepodize the blind.)는 것이 그것이다. 정보화의 핵심 기기인 컴퓨터가 시각장애인에게 던져준 희망과 우려를 잘 반영한 재치있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정보화는 시각장애인의 삶에 있어서 엄청난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다. 정보화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비시각장애인에게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정보화가 비시각장애인에게는 생활을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고 풍성하게 하는 수단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를 시각장애인의 삶의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보화는 시각장애인에게 기존에 불가능하던 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먼저, 정보화가 잘 된 시각장애인은 이전에 혼자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보화 이전에는 사랑하는 애인에게 편지를 써야 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대필을 부탁하여야 했으며, 신문을 읽고 싶을 때도 타인이 읽어 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업무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읽어보려 해도 주변의 동료에게 의존해야 했고, 공부에 필요한 책을 읽으려 해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녹음을 부탁해야만 했다. 모든 의사소통 수단이 시각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은 아무리 훌륭한 언어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여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정보화가 된 시각장애인은 PC에 설치된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하여 혼자 힘으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하여 각종 신문을 실시간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전자적으로 저장된 서류를 컴퓨터를 이용하여 처리할 수 있으며, 스캐너와 문서 인식 시스템을 이용하여 일반 서적들을 읽어 볼 수 있다.
둘째로, 정보화가 잘된 시각장애인은 정보 접근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정보화 이전의 시각장애인에게는 제한된 정보만이 제공되었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 주는 서비스가 있다 하더라도 제공자의 선택에 따라 일부가 제공되었다. 점자 서적도 그 제작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극히 일부만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하면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컴퓨터를 이용한 점역 자동화로 많은 서적들이 점자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보가 제공되는 매체도 다양해져서 컴퓨터 상에서 음성을 통하여 읽을 수 있는가 하면, 점자로 출력하여 읽어 볼 수 있고, 점자 단말기에 저장하여 휴대해 가며 읽어 볼 수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의 정보 접근은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홈페이지 제작자들의 인식만 개선된다면 비시각장애인들과 아무런 격차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셋째로, 정보화가 잘 된 시각장애인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으로는 전통적으로 역술, 안마, 침술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현재도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은 시각장애인들은 촉각이 예민하므로 안마와 침 같이 섬세한 감각을 요하는 일에 적합하다는 생각에서 연유한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사회는 정보화 사회이고 정보를 잘 다룰 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정보화 관련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모든 업무가 정보화되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만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된다면,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비시각장애인들과 같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적성과는 관계없이 안마업을 유일한 직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정보화를 통한 새로운 직종에로의 진출이야말로 커다란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넷째로, 정보화가 잘 된 시각장애인은 다양하게 여가를 선용할 수 있다. 정보화 이전의 시각장애인의 여가라고는 라디오를 듣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읽을 만한 책도 별로 없었으며,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문밖으로 한발자국만 내딛어도 직면하게 되는 비우호적인 도로 환경은 시각장애인들로 하여금 집안에서 따분하게 지낼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여러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각종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도 컴퓨터를 통하여 감상하고 흥미로운 소설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먼 곳에 있는 친구 또는 전연 안면이 없는 사람과도 시각장애인용 게임을 즐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 정보화를 위한 과제
이와 같이 정보화는 시각장애인의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
먼저 시각장애인 정보화의 기술적 기반이 확고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컴퓨터의 화면에 나타나는 내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화면의 내용을 시각장애인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읽어주는 화면 읽기 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또한, 컴퓨터에 입력된 일반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여 주는 점역 프로그램의 개발 역시 시각장애인 정보화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소프트웨어이다. 그밖에도 시각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점자 단말기의 보편화도 시각장애인 정보화의 필수조건이다.
둘째로,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비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기까지 그다지 많은 교육이 필요하지는 않다. 컴퓨터는 점점 사용자들이 배우고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개발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컴퓨터라는 것이 대다수의 비시각장애인들을 주 사용자로 설정하고 개발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인터페이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시각장애인보다 훨씬 많은 훈련이 요구된다. 눈에 보이는 버튼만 클릭하면 될 것을 시각장애인은 관련된 모든 개념을 숙지하고 있어야만 원활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에게는 쳬계적이고 충분한 정보화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컨텐츠들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 비록 시각장애인들이 정보화를 통하여 비시각장애인들과 같은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최적화된 컨텐츠들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삶의 현장에서는 시력의 유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하므로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컨텐츠는 일반 컨텐츠와 차별화 될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거나,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 컨텐츠들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 정보화의 의미와 해결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정보화 현황은 어떠한가. 다음에는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정보화 기술, 교육, 컨텐츠 개발 현황에 대하려 차례로 짚어 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