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블로거TO블로거
천천히, 평화를, 이야기하기
영은님의 블로그 slow peace (http://blog.jinbo.net/slow peace)

지후 / 블로거  
조회수: 4091 / 추천: 65
올해처럼 전쟁 같은 봄이 또 있을까. 이제 겨우 4월이 지나가고 있건만, 새만금의 숨통은 기어코 죄어들었고, 황새울 들녘에는 매일 같이 전운이 감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힘겹게 숨쉬는 자연이 있고, 스스로를 지키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를 지키려 애쓰는 인권활동가, 평화활동가들이 있다.

진보넷 블로그를 하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는, 서로의 맨손을 맞대어 몹쓸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때로 악수를 청할 줄 아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주로 존경어린 눈빛으로 훔쳐볼 따름인 여러 블로그들 중에, 여기, 더디 오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영은님의 블로그를 소개할까 한다.
평화는 지금 내 곁에 있기도 하고, 저 멀리서 더디 오기도 한다. 그리고 slow peace 영은님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좋은 활동가’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그는, ‘어쩌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으로 진보 블로그에 평화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되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가 기대되는 공간이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여성활동가인 그는, 여성이 왜 병역거부 운동을 하느냐는 따위의 달갑지 않은 질문에 대해, ‘병역거부 운동은 단순한 입영거부가 아니라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총을 들고 누군가를 짓누르는 안보가 아니라 더불어 서로를 돕고 지키는 안보를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남성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누구나의 이야기’임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여성은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서 기껏해야 후원인의 역할에 머무르는 것 아니냐는 의도된 전제를 그렇게 단숨에 뛰어넘는 것.
또한 그는, ‘자기의 신념을 애써 모른척하며 군대에 가야만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자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딱히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받아야 하는 차별을 기꺼이 감수하고 국가의 비합리적 차별에 저항’하기를 자처한 병역거부자라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남성이라는 기득권’에 대해 둔감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는다. 나는 그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이성의 흔적들이 참 좋다.

병역거부자들이 군대를 거부하는 대신, 군대 못지않은 분위기의 감옥에 다녀오게 된다는 건 상식이지만, 세상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어떤 상처들이 남아있을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나는, ‘출소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을 군대 문화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음 좋겠다’는 문장 하나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가 생각하기엔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기록을 통해 나는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 하나둘 배우고 있다. 이 정도면 평화활동가인 그에게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 평화 일기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아닐지.

다른 좋은 블로그도 많은데 굳이 영은님의 블로그를 소개하자고 마음먹은 건 사실, 이래저래 힘들어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좋은 활동가가 될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초보활동가(활동을 시작한 지는 여러 해가 지난 듯하지만)의 모습이 어딘가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했다.
왜 나는 단 한 번도 내 자신을 보듬어 주지 않았던가, 닳아버린 빠떼리 만땅 충전을 외치는 모습이나, 때로 지랄맞은 세상에 대해 남김없이 분노를 표현하는 모습, ‘가슴깊이 응어리지지 않게 좌충우돌 실수하고 깨지면서 잘 풀어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고 싶다는 구절을 보면, 맞아맞아, 나도 그래, 하고 빙그레 웃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지금 나의 운동이,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슬프다는 말까지도 속속들이 공감한다.

그가 말하는 slow peace는, 어쩌면 세상의 평화이기도 하고 내 안의 평화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부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평화롭지 못한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며 세상의 평화를 향해 나아간다. 그건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린 과정. 당연히 우울하고 슬픈 날들도 많다.
하지만 영은님에게는 아주 씩씩한 구석이 있다. 무척 지쳐있다가도 다시 튀어오르는 경쾌함, 그의 블로그에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그가 발견하는, 살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가 말을 건네는 풍경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잊지 않고 그의 블로그에 들르게 되는 것일 테다. 특히 자전거 프로젝트는 아무쪼록 7탄까지 무사성공을 기원한다. ^^

그의 평화일기가 더디더라도 차분한 걸음으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툴툴거리는 말투도 여전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섬세한 사유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장래희망이 ‘좋은 활동가’인 그는, 내 보기엔 이미, 좋은 활동가로 가는 길에 들어서 있다.

그에게 파이팅을, 그리고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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