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나와
털어놓으니 행복하다! 무엇을? 여성을!
언니네 편집장 야생싸가지 (http://www.unninet.co.kr)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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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일 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상상을 실현시킨 공간이 있다.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co.kr)가 2001년 2월에 문을 연 ‘자기만의 방’이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발랄한 고백들이 넘쳐나는 그 공간에서 ‘암중모색(色?)’을 소리 높여 외치는 한 언니를 발견했다. 언니네의 ‘야생싸가지’님을 만나, 신나고 재치 넘치는 여성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홍지은(아래 ‘홍’) : 현재 하고 계시는 일은?

야생싸가지(아래 ‘야’) :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고, 언니네의 편집장입니다.

홍 : 언니네는 언제부터 이용하게 되셨나요?

야 : 언니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1년이에요.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쓰다가, 편집팀에 들어와서 일하게 된 것은 2004년부터입니다.

홍 : 2001년이면, 다음과 프리챌이 유명했고 싸이월드도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때인데요. 그런 곳을 놔두고 굳이 언니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 : 학부 시절,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여성운동이 활발했습니다. 같이 활동하던 언니들이 여자들을 위한 사이트가 있다고 알려줘서 언니네에 가입하게 됐어요. 확실히 다른 사이트들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학교 선배들이나, 과방 문화에 대해 비판을 해도 비난 대신에 지지를 받았으니까요.

홍 : 보통 한 사이트를 1년 넘게 꾸준히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야 : 물론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언니네 안에서 수많은 커뮤니티들이 생기고, 거기에서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을 읽다보니 이 공간에 애착이 생겼어요. 또 언니네의 ‘자기만의 방’(아래 ‘자방’) 때문이기도 해요. 제 생각에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기분이 좋았어요. 과방에서는 비난과 욕설을 들어도, 언니네 자방에서는 사람들이 같이 화내주었지요. 정말 많은 힘이 됐습니다.

홍 :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대학 오기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것인가요?

야 : 고등학교 때 저는 ‘명예남성’이었습니다.(웃음) 여자애들과 안 놀고 여자애들 무시하고, 그런 애였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깨졌어요. 대학에 들어오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아!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밤새도록 술 마시고, 게임방, 찜질방 가는 코스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여학생들의 외모 꾸미기, 또 여자 후배를 대상으로 작업을 거는 선배들을 보면서 ‘여자’를 인식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남학생들하고만 어울리는 것이 ‘뭐 어때?’ 이런 생각이었는데, ‘남자처럼 살아야 한다’, ‘남자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내가 정말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깨달았죠.

홍 : 언니네를 이용하는 동안, 여성주의 시각에서 변한 것 또는 정말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야 : 변한 것은 성폭력에 대한 시각이 아닐까요? 제가 2001년에 학내에서 활동했을 때, 성폭력 사건들이 많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제도화된 것이 없었어요. 그리고 자보 같은 것 붙이면 자보를 찢는다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그게 무슨 성폭력이냐?’면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 것들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최근에 최연희 의원 사건이 터졌을 때, 인터넷의 덧글을 보면 그런 생각들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여전히 페미니스트를 귀찮게 보는 것?(웃음) 또 소수자 문제도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지금도 내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죠. 인터넷에서 개념 없이 글 쓰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고요.
홍 : 언니네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있다면?

야 : 언니네 중독이라서,(웃음)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우선 스스로 행운이라고 싶을 정도로, 자방에 많이 올라오는 성폭력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놀랬어요. 이런 일들이 1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제 일처럼 섬뜩하고 괴로웠습니다.
한 번은 가정폭력을 신고하러 간 여성에게 경찰관이 “네가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한 것이 언니네에 알려진 적이 있어요. 그 때, 언니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홈페이지 마비되도록 글을 올렸고 결국 경찰관에게 사과를 받았죠. 페미니스트로 살다보면 울컥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일이 생기면 바로 행동으로 연결돼요. 언니네 사람들, 정말 재미있어요.(웃음)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모임, 이를테면 영화 모임 같은 것들도 많아서 자주 나갔어요. 그렇게 해서 인연들이 왔다 갔다 하게 되었죠.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이에 대한 팁 같은 것도 공유해요.

홍 : 자방에 올라온 글들을 모아 발간한 책 <언니네 방>에 야생님이 쓴 ‘자위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이 있던데요.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야 : 가족들에게는 이 책을 못 보여 주겠더라고요. 앞으로도 못 보여주지 않을까요?(웃음) 이런 소재들은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기 제일 힘들어요. 저희 엄마는 분명히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죽어가는 불쌍한 애로 생각할 거예요.(웃음) 친구들에게는 물론 책 이야기를 하고, “사봐라! 팔아야 한다!” 라고도 말했죠. 그렇지만 역시 엄마에게 이야기하기는 좀 힘들죠. 누구랑 연애를 한 이야기도 아니고, ‘자위를 어떻게 합니까?’라는 이야기인데요.(웃음)

홍 : 보통 자위하면 남성들의 자위만 이야기되고, 그 마저도 음담패설 같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이 제일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만큼 여성들의 자위란 낯선 소재인데, 어떤 계기로 쓸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야 :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호기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시절, 포르노를 보면서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에 대해 괴로워했어요.(웃음) 그런데 대학 와서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까먹었어요. 그리고 “나는 성욕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다녔죠. 그런데 옛날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의 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거죠.
물론 그 과정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에요. 수치스럽고,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죠. 관심이 있더라도 여전히 여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기는 힘들고요. 여성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자유로워야 하는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이 글은 그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쓴 글이에요.
그리고 <언니네 방>에 이 글이 처음부터 들어가려 했던 글은 아니에요. “책을 팔아야 한다!”는 출판부의 강력한 요구로 실린 글입니다.(웃음)

홍 : 야생님의 자방 이름인 ‘zoology(동물학)’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야 : 자방 이름이 많이 바뀌었는데 연혁도 써놨습니다.(웃음) 이 제목은 굉장히 쓴 지 오래된 거예요. ‘동물학’이라 정한 것은, 페미니즘도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지?’라는 물음에 관심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저도 그 과정을 알아간다는 뜻에서. 사람들도 결국 동물이잖아요?

홍 : 야생님 자방의 글 중에, 특히 인터넷 공간의 문화에 대한 지적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를테면 ‘딸녀’에 대한 비판들이요. 확실히 한국의 인터넷 공간은 보통 남자들의 언어가 넘쳐나고, 여성들의 언어와 공간은 위축되어 있는데 왜 그럴까요?

야 : 저는 인터넷을 굉장히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인터넷 논쟁에 휘말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경우에 여자가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것 때문에 공격이 들어와요. 성적인 모욕도 있고, 그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던 사람이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면 갑자기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해요. 그래서 말투 같은 것을 조심하게 됐어요. ‘~했어요.’라고 안 하고, 일부러 영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유명한 필자들은 거의 남자들이에요. 기사나, 블로그나 여자들의 글은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네이버에도 제 블로그가 하나 있어요. 다른 공간에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알고 싶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제 글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낙태나 성폭력에 관한 글을 썼을 때, 그것에 대해서 공감하는 여자분 들이 많이 있어요. <언니네 방>에 실린 ‘자위’ 글도 올렸던 적이 있죠. 남자들은 야하다고 그랬는데, 여자들은 비밀 리플 달아주고, 퍼간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언어가 지금은 인터넷에서 큰 파급력을 갖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이렇게 알음알음 하면서 알려질 것 같아요.

홍 : 언니네의 자방들을 둘러보면서 참 멋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은데.

야 : 확실히 싸이월드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언니네는 작은 커뮤니티입니다. 여성주의자라고 자신을 정체화하고 오기 때문이고, 특히 지방에는 잘 안 알려졌어요. 집단 문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하지만, 유료회원이 700명 정도인데, 매월 업데이트 되는 웹진의 조회 수가 만 명 정도 되요. 웹진 중에서는 높은 수치라고 하더라고요. 점점 더 알려지고 있는 중이죠. 그래도 약간 폐쇄된 공동체라고 느끼는 게, 우리만 구사하는 언어를 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성들의 언어라는 게 맥락이 파괴된 것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그것을 다 이해하고 공감해요. 하지만 딱히 관심이 없거나,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일 수도 있어요. 이런 점이 강점이자 한계인 것 같아요.

홍 : 어떻게 하면 대중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야 : 여성주의는 이제 문화적 경향 같아요. 마초적인 남자들이 인기 없는 것이 한 예죠. 또 <언니네 방>에 대한 반응을 봐도 알 수 있어요. 벌써 3판 인쇄를 했고, 책을 보고 가입했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언니네의 언어들이 인터넷 공간의 문화 때문에 발화할 수 없었을 뿐이지, 여자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홍 : 그래도 아직 언니네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니네 광고 한 번 해주세요!

야 : 여자들이 말할 공간이 참 없어요.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에도 그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언니네는 여자로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이를 듣는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에요. 그러면서 서로 위로하고 지지를 받는 공간이죠. 이 매력적인 공간에 함께 중독되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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