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파워인터뷰
문화・제약 자본이 만든 상품의 무역 자유화, 지적재산권 제도의 실체
남희섭,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대표 (hurips@gmail.com)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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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노동, 영화, 시청각미디어 등 한미 FTA에 반대하는 각 분야의 대책위원회가 속속 출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1일에 지적재산권 대책위원회도 공식 출범하였다. 공공의약센터, 문화연대,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는 출범 전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한미 FTA에서 논의될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한 분석 작업에 착수했으며 현재 거의 검토가 완료된 상황이다. 다른 분야의 이슈와 달리 지적재산권 분야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지적재산권 분야의 문제점을 얼마나 쉽게 알려내느냐가 대책위 활동에서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월간 <네트워커>는 지난 호에서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이슈를 다룬데 이어, 이번 호에서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어떤 이슈가 논의될 것인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 남희섭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오병일 (아래 오) : 지난 4월 11일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지적재산권도 한미 FTA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적재산권 의제와 관련하여 정부의 협상 전략이나 의제 등이 공개되고 있는지요?

남희섭 (아래 남) : 우리 정부는 협상 전략이나 의제를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외비라고는 하는데, 대외비라서 공개를 하지 않는지, 협상 전략이 아직 없어서 공개하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 : 그렇다면, 대책위에서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지적재산권 의제나 동향 등을 파악하고 계시는지요?

남 : 미국 정부나 의회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나 주한미상공회의소의 자료를 보면 미국이 한국에 무엇을 요구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 협정문을 통해서도 의제와 동향을 파악할 수 있지요.

오 :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한미 FTA에서 논의될 주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남 : 미국은 2-3년 전부터 저작권 분야에서 한국의 보호수준이 미흡하다는 주장을 줄곧 해 왔습니다. 주로 디지털 저작물과 관련하여 일시적 복제 문제,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문제, 접근권 통제를 위한 기술적 보호 조치의 인정, 사적복제와 디지털 도서관 예외의 제한 등이 있고, 저작권 보호기간을 늘리거나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한 단속강화도 주요 의제가 될 것입니다. 특허 분야에서 미국은 특허보호기간 연장과 특허청과 식약청(식품의약품안전청)의 업무 연계를 통한 특허권 보호를 주장할 것이고, 신약에 대한 데이터 독점권도 주요 쟁점 중 하나라고 보입니다.

오 : '일시적 복제' 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데요.

남 :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컴퓨터에 나타나는 화면은 다른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가 이용자의 컴퓨터에 잠시 저장되어야 가능한데, 이것을 ‘일시적 복제’(temporary reproduction)라고 합니다.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에도 컴퓨터의 임시 메모리(RAM)에 프로그램의 일부가 저장되는데 이것도 일시적 복제입니다. 인터넷에서 음악이나 영화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을 때에도 일시적 복제가 일어나지요.

오 : 그러니까 미국의 요구는 그러한 ‘일시적 복제’도 저작권자의 권리로 인정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일시적 복제를 할 때에도 저작권자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남 : 그렇습니다. 미국은 일시적 복제를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물 이용의 하나라고 하면서, 컴퓨터의 임시 메모리에서 일어나는 복제에도 저작권이 미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미국의 주장처럼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자의 권리로 인정하면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물에 접근할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죠.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영리적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저작물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는데, 이처럼 개인적 이용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서 신문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는 행위나, 대학교수가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는 행위,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행위들이 모두 저작권 침해 행위가 됩니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복제를 인정하면, 예컨대, 우리가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리 눈의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도 복제로 인정하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오 : 미국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현재 WTO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하고 있고, 국내법도 이를 따르고 있는데요.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어떻습니까?

남 : 미국과 유럽연합은 모두 저자가 죽은 후 70년까지 저작권이 보호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93년 이전까지는 나라마다 보호기간이 달랐는데 이것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보호기간이 가장 긴 독일의 70년을 채택했습니다. 70년보다 짧게 할 경우 독일 저작권자의 반발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98년에 저작권보호기간을 70년으로 늘리는데, 유럽의 저작권 기간 연장의 영향을 받은 면도 있지만, 미키마우스의 보호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월트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는 1928년 증기선월리에 처음 등장한 이후 2004년에 저작권이 만료될 운명이었는데, 저작권 기간 연장으로 2024년까지 수명이 늘어났죠. 법안 발의를 했던 미 하원의원 소니보노는 저작권은 보호기간 없이 영속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하지요. 미국은 지난 40년동안 11차례나 저작권 보호기간을 늘려왔습니다. 미국의 98년 저작권기간연장법을 미키마우스법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오 : 국제협정에 규정된 것보다 보호기간을 더 연장하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 : 국제협정은 최소 보호기간을 정하고 이보다 더 긴 보호기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협정에서 인정하는 최소 기간도 저자 사후 50년으로 너무 깁니다. 이 기간을 20년이나 더 연장하자는 것은 저작권을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의 독점 이윤만 보장할 뿐입니다. 저작권에 소유권과 달리 보호기간을 설정한 것은 독점권을 주어 창작 의욕을 높이되, 제한된 보호기간 이후에는 공공영역으로 환원시켜 공공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까지 보호하던 저작물을 20년 더 보호한다고 하여 창작자의 창작의욕이 얼마나 더 높아질까요? 기업들의 경우에도 20년의 보호기간 연장이 되었다고 하여 그 전에는 투자하지 않던 영역에 새로 투자하게 될까요? 그러나 보호기간이 늘어나면 저작물의 사회적 이용 측면에서는 피해가 확실합니다. 지금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에 대해 다시 20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지요.

오 : 온라인 상에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기술적 보호조치의 강화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이런 조치들이 국내에서는 약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요? (참고 : 기술적 보호조치란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암호화 등 저작물에 적용된 기술적 통제 장치를 의미한다)

남 : 국내 조치들이 약하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국내 논의는 제대로 못 한 채 조약 가입을 위해 성급하게 도입한 측면이 더 큽니다. 기술적 보호조치는 1996년에 체결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저작권조약에 들어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조약에 가입하면서 국내법으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를 보면, 저작물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통제하기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도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참고 : 현재 우리나라는 ‘접근’이 아니라, ‘이용’만 통제하고 있다.) 이것은 WIPO 저작권 조약에서도 인정하고 있지 않는 내용인데, 미국이 WIPO 저작권 조약 논의과정에서 접근 통제를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의 인정을 주장하였으나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은 자국법을 개정하면서 접근 통제를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를 인정하였고, 이를 근거로 FTA 협상에서 상대국에게 동일한 내용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 : 저작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문화의 발전인데요. 미국의 요구와 같이 저작권을 강화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남 : 미국이 주장하는 저작권 보호의 강화는 자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한 것이지 창작을 활성화하고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을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싸움에서 할리우드가 거둔 승리의 결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판매량 순위가 집계되는 음반의 약 80%를 상위 4개사가 독점하고 있다는데, 저작권 강화의 수혜자인 출판업계나 음반, 영화산업은 미국을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통합되고 산업집중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투자보호법이나 산업보호법으로 변질된 미국의 위험한 제도를 국내에 그대로 수용한다면, 정보접근권이 심각한 제약을 받고 문화적 권리가 약화될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많아질 것입니다.

오 :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년 보고서를 보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나 지적재산권 법률 집행의 강화 외에도 ▶ WTO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 의거한 데이터 독점권 보호, ▶ 보건 규제 감독 및 승인당국과 특허당국 간의 연계 강화를 통한 의약품 승인 과정에서 특허침해 방지와 같은 요구가 있던데요.

남 : 그렇습니다. ‘데이터 독점권’과 ‘식약청-특허청 연계’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몇 해 전부터 요구해 오던 것입니다. 특히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함께 다국적 제약사가 가장 중요한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신약의 품목허가를 얻기 위해 식약청에 제출하는 신약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가리키는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식약청에 제출한 자료를 다른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참고 : 원 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복제 의약품) 허가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오리지널 제약사에게 독점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 : 우리가 WTO TRIPS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남 :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TRIPS 규정에 데이터 독점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TRIPS 규정에는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는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 자료를 불공정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약사법과 영업비밀보호법은 이러한 자료의 공개와 불공정한 이용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TRIPS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불공정한 이용은 계약을 위반하거나 남을 속여서 자료를 몰래 빼내서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주장은 식약청에서 이미 안전하다고 판단한 신약과 동일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신약의 자료를 근거로 제네릭 의약품을 안전한 것이라고 허가해 주는 것도 불공정한 상업적 이용이라는 거죠. 그러나 미국의 주장처럼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면, 후발 제약사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시험을 반복하라는 꼴인데, 미국의 식약청 조차도 이것은 비윤리적이고 불필요한 비용낭비라고 할 정도입니다.

오 : 미국이 요구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고는 있는 것이군요.

남 : 데이터 독점권 제도는 한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합니다. 신약은 허가를 받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재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정말로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다시 심사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재심사 기간 동안에는 제3자가 동일한 의약품의 허가를 받으려면 신약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와 동등 이상의 자료를 내야만 합니다. 신약의 재심사라는 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료의 독점권을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등 이상의 자료라는 것도 잘못된 규정입니다. 신약에 대한 자료는 공개를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무슨 자료를 냈는지도 모른 채 동등 이상의 자료를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규정은 약사법에는 없고 식약청의 고시에만 들어 있을 뿐입니다. 상위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훈령에 불과한 식약청 고시에서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죠. 데이터 독점권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특허권과 별개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을 개발하면 예외 없이 특허를 받는데, 의약품이 안전한지 유효한지 시험하는 것은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특허를 받기 위한 발명 과정의 하나입니다. 안전하지도 않고 유효하지 않은 의약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이 될 수 없으므로 이런 자료를 보호하더라도 특허권과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별개로 보호하라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호주가 체결한 FTA에도 데이터 독점권의 기간은 특허권이 만료되더라도 단축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2003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신약의 재심사 기간보다 특허권이 먼저 만료되는 품목이 100개가 넘습니다. 결국 데이터 독점권은 불공정한 행위를 제재하거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의 시장독점을 보장하는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이죠.

오 : 앞서 얘기한 주한미상공회의소 보고서에서는 의약품 승인 과정에서 특허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동의하시나요? 그리고, 식약청과 특허청의 연계를 강화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남 :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특허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아니라, 특허침해가 생길 수 있는 의약품을 식약청이 허가해 주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지요. 이런 주장은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등록된 특허가 정말 유효한 권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의약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는지 아닌지는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식약청이 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식약청은 판매 허가를 신청한 의약품이 안전한지 유효한지를 심사하는 기관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식약청의 허가 과정에서 다른 자의 특허가 있으면 허가해 주지 않는데, 이런 약 중에서 특허권자와 제네릭 제약사가 실제 분쟁까지 간 사건 가운데,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거나 특허가 무효라는 이유로 제네릭 제약사가 이긴 것이 70% 가까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특허청에서 그렇게 엄격하게 심사한다고 하여 등록해 준 특허권의 무효율이 무려 30%나 됩니다. 부동산 등기부에 등록된 부동산의 실제소유주 30%가 잘못된 것이라면 아마 부동산 거래는 제대로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실한 권리를, 그것도 침해를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특허권자가 주는 정보만 믿고 식약청이 허가를 거절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습니다.

오 : 한국과 미국이 지적재산권을 이슈로 협상한 것이 당연히 이번이 처음은 아닐텐데요. 한미 FTA에서 지적재산권 협상이 과연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과거에 진행된 협상으로부터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남 : 한미간의 지재권 협상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은 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장기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 신흥 공업국의 도전을 받으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짭니다. GATT에 지적재산권 규범을 넣기 위한 다자간 협상과 개도국을 상대로 한 양자 협상을 병행해 나가는데, 양자 협상에서는 통상법을 적극 활용합니다. 1984년에 통상법에 지적재산권 조항을 집어넣고 이것을 한국에 가장 먼저 적용합니다. 85년 레이건 행정부는 한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통상법 301조 조사권을 발동하고 한미간에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됩니다. 말이 협상이지 당시 한국측 실무자조차 방어밖에 없었던 협상이라고 한 협상이 시작되고 불과 10개월 만에 한국은 미국의 요구대로 지적재산권 제도를 대폭 손질합니다. 저작권을 사후 50년으로 늘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제정하고 세계저작권조약과 제네바 음반조약에 가입을 하지요. 그 뿐만 아니라 미국 저작물만을 소급보호하기 위한 행정조치를 단행합니다. 이를 두고 일본의 한 학자는 “우방국 사이의 합의인지 눈이 의심스럽다. 전승국이 패전국으로부터 노획물을 독점하는 것과 같다.”는 조롱에 가까운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당시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한국의 군사정권은 미국으로부터 무역보복을 당하면 정치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사회적 인식이 거의 없었던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거의 발가벗었던 것이죠. 그 후 미국은 통상법을 다시 개정하여 그 유명한 스페셜 301조를 만들어 매년 각국의 지적재산권 관행에 대한 연차 보고서를 만듭니다. 한국은 스페셜 301조의 무역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갖가지 조치들을 취하게 됩니다.
95년이 되면 GATT에 지적재산권 규범을 넣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성공하여 TRIPS 협정이 성립합니다. 그 다음 해인 96년에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저작권조약이 만들어지지요. 이 때부터 한국은 미국이 주도로 만든 조약에 가입하라는 압력을 받고, 조약을 반영하기 위한 국내법 개정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미국이 다자간 협상이나 양자 협상을 통해 구축한 지적재산권 제도는 통상 문제를 전제로 한 무역자유화를 기본 틀로 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창작자 개인의 사적 권리와 일반 공중의 권리 사이의 균형 유지는 법이나 조약의 서문을 장식하는 수사로 전락하였고 문화 자본이나 제약 자본이 만든 지적 ‘상품’의 무역자유화가 지적재산권 제도의 실체적 내용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 바로 한국이고, 한국은 자체 내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창작물 보호 제도를 만들 기회를 박탈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 : 마지막으로, 지적재산권 대책위는 한미 FTA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신지요?

남 : 한미 FTA 협상에서도 한국이 예전의 협상 전철을 밟는다면 미국 연방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이 초래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통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지재권 제도가 마치 기술의 혁신이나 문화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지재권의 주무부처에서도 이런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는데, 주무부처도 지재권 강화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이해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부처가 공공영역을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적 수술도 필요하지만, 한미 FTA 정국에서 지재권의 사회 인식을 바로 잡는 작업이 더 시급합니다. 미국은 FTA 협상에서 지재권을 매우 중요한 의제로 취급하지만 협상 상대방인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미국의 주장에 대해 예전과 같은 방어밖에 없는 협상에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한미 FTA를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고 실현불가능 한 시한을 정해 밀어붙인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살펴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지재권 대책위는 지재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대중화 작업과 협상 당사자인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시민사회의 의견을 내는 활동, 그리고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범국본의 활동에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오 :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남희섭 대표는 ‘일시적 복제’의 복제권 인정 문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문제, 기술적 보호조치의 강화 등 저작권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는 자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오히려 민중들의 정보접근권 및 문화적 권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데이터 독점권 보호, 식약청-특허청 연계 강화 등의 주장은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만을 강화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던 한미간 지적재산권 협상의 역사를 뒤돌아볼 때, 이번 한미 FTA 협상을 통해 미국 연방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이 될 수 있음에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한미 FTA 정국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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