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만화뒤집기
너무나 담백한, 군더더기가 없는 그래서 건조한 다니구치 지로의 단편들.
[느티나무의 선물] (다니구치 지로 지음 / 우쓰미 류이치로 원작, 샘터)

신성식 /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toonor@jinbo.net
조회수: 4046 / 추천: 66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를 처음 본 것은 ‘개를 기르다’이다. 이 작가의 걸작은 아무래도 ‘아버지’나 ‘열네 살(1,2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보라고 권유받은 작품은 잘 안 본다. 그러다 보니 매체가 권하는 또는 권할 수밖에 없거나 권하기 좋은 작품들도 잘 안 보게 된다. 나도 납득하기 힘든 관성이다 보니 남들은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핑계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해서 ‘아버지’나 ‘열네 살’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다만 ‘개를 기르다’에서 느낀 어떤 점들이 ‘느티나무의 선물’에서 더 커져서 이건 한 번 집고 넘어가보자는 생각이 이글을 쓰게 하였다.

먼저 ‘개를 기르다(청년사)’는(잠깐!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글에는 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다고 밝혀야겠다) 정말 딱 개를 기른 얘기 밖에 없다. 개랑 같이 산 얘기라거나 개를 통해 인생을 반추하는 뭐 그런 얘기라는데 반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이지 개를 기른 얘기가 다였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이 책에 있는 또 한편의 작품이 흰산(주로 히말라야 부근 등의 만년설이 뒤덮힌 산들 또는 그만큼 높은 산들에 대한 별칭, 설산이라고도 함)에 오르는 얘기인데 정말이지(역시 스포일러 포함) 산에 다시 오르는 얘기 밖에 없다. 뭐 이런 산 같은 경우람!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보고나서 진짜 ‘담백’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군더더기, 기름기라고는 단 한점도 없는 작품. 이런 거는 첨이다. 다니구치 지로 스스로도 말하길 이런 내용의 작품이 출판(내지는 연재)될 수 있을까 의심했을 정도라니까 무지 담백해서 싱겁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단순함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그래서 ‘느티나무의 선물’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은 여전히 담백했고 다만 너무 담백해서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담백한 게 뭔 문제일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다소 까탈스러울 수 있으나 아무튼 일단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개를 기르는 주인공 부부가 개 때문에 의견 대립이 생기기는 하지만 다른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 남편이 직장에서 당연히 겪을 법한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도 없다. 부부간에 역할 분담도 너무 잘한다. 살다보면 만나는 소소한 갈등이 전혀 없다. 오로지 개의 상태와 그에 따른 느낌이 다다. 그런데 그게 정말 애절하다. 수명이 다되어 죽어가는 개의 이야기가 아주 섬세한 반면 나머지는 없다.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산 얘기(약속의 땅)도 마찬가지다. 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이 다시 산에 간다는 얘기인데 직장도 잘 얻고 결혼도 잘하고 아기도 잘 기르다가 산에 다시 간다. 아내는 때맞추어 남편이 산에 가도록 도와준다. 앞뒤가 너무 척척 맞는다. 마치 드라마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만 들면 택시가 서고 심각한 주차난에도 아무 문제없이 차를 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주제와 상관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런 식으로 처리된 것뿐인데 우리네 삶과는 별개로 보이는 뭐 그런 거 말이다. 뭐야, 겨우 이런 거로 트집 잡는단 말이야?

사실 ‘개를 기르다’를 볼 때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앞서 밝혔듯이 ‘느티나무의 선물’이라는 다니구치 지로의 또 다른 단편집을 보고서야 너무 담백해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작품집에는 여러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갈등이 잘 해소된다. 문제가 잘 해결되고 오해가 풀리고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산>이라는 단편을 보면 이렇다. 부모의 이혼으로 성장이 순탄치 않았던 주인공은 성인이 되어 거의 내던지듯 사는데 어느 날 동생이 와서 어릴 적의 오해를 풀어내고 가버린다. 주인공은 정신 차리고 막사는 삶을 접는다. 그리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잘 산다. 나중에 동생이 다시 온단다. 해서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준 동생을 잘 맞아주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너무 잘 풀린다. 그것도 빨리.)

게다가 그림체는 또 얼마나 깔끔하고 꼼꼼한가. (주인공 막나갈 때 동생이 찾아온 그 장면이다. 차림새도 그렇고 막나가는 사람치고는 너무 깔끔하게 잘산다.) 일본 만화답게 사진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예쁘장하고 정돈된 캐릭터들이 잘 어울린다. 하다못해 할아버지들도 예쁘다. 톤 역시 그야말로 무난하여 다소 흐린 느낌이 들 정도다. 뭐 하나 튀는 것이 없다. 자극적인 것도 물론 없다. 이런 점이 이 단편집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트집쟁이를 만나서 그의 장점이 단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의 등장인물들은 왜 그리도 서로를 잘 이해하지? 어떻게 그렇게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미치다 보니 ‘개를 기르다’를 볼 때의 감동 보다는 너무 건조한 너무 기름기가 없어 팍팍한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건조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장치는 시점이다. 136쪽의 마지막 칸의 시점과 나머지를 비교해 보시라. 다른 칸들이 일상적인 눈높이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마지막 칸은 마치 천정 구석의 감시 카메라에서 봄직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비슷한 원근법을 중세나 조선시대 그림에서 만날 수 있다. 무슨 얘기냐면 이런 시점은 익숙하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만화를 배울 때 원근이나 공간에 대한 재미가 붙어서 내용에 상관없이 특이한 시점을 잡았다. 당연히 결과는 부자연스러웠다. 과했던 것이다. 그 뒤로 ‘적당’을 이해하는데 한참을 걸렸다. 그런데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에서는 자주 이런 시점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확장해서 한 쪽 모두를 장식하기도 한다. 일정한 거리에서 담담하게 바라보게끔 하는 데에 ‘적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그 거리감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기름기에 찌든 분들은 꼭 보시고 건조한 게 익숙한 분들은 조심하시라는 것!

추신: 이글을 쓰면서 나까지 굳이 일본 만화를 소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만화의 기세에 눌려 오금을 못 펴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거꾸로 비판을 위해 굳이 일본 만화를 선택하는 것도 좀 우습고. 이처럼 참으로 하나마한 얘기를 하게 하는 일본 만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 상업 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솔직히 재미있는 일본 만화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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