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북마크
짧지만 알찬 경제학 책 하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02년)

자일리톨 /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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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과는 반대로 꽤 긴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칼 폴라니의 사상을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게끔, 옮긴이가 칼 폴라니의 글 몇 개를 뽑아 번역해 놓은 문고본이다. 개인적으로 칼 폴라니는 인류학 교양수업을 들었을 때, 그리고 간혹 이러저러한 글에서 인용되는 것을 본 것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하는 학자였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 갔다가 책 날개의 저자 소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저자 소개에는 “그가 평생 고민했던 것은 인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였다고 한다. 그가 귀 기울이고 기꺼이 나누어지려고 했던 이웃의 고통은 단지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론적 틀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데서 오는 모든 종류의 절규와 신음을 포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씌어져 있다.

칼 폴라니는 18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영국, 미국, 캐나다 등을 떠돌다 1964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르주아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일찍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이었고, 그로 인해 파시즘의 탄압을 받다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의 사상은 정치경제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방면에 걸쳐 분산되어 있어, 하나의 이론적 틀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은 7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라니가 직접 쓴 5개의 글(① 낡은 것이 된 우리의 사고방식, ② 거대한 변형 중에서, ③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노트, ④ 우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 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이 있고, 그의 딸이 쓴 폴라니에 대한 소개, 그리고 옮긴이가 쓴 “칼 폴라니의 시장자본주의 비판”이라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옮긴이 홍기빈씨가 쓴 글이 책 전체를 조망하는데 가장 이해하기 쉽고 좋았다. 아마도 현재의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옮긴이의 꼼꼼한 주석과 훌륭한 번역도 매우 좋았다)

칼 폴라니는 우리가 경제원론에서 배우는, 애초부터 시장자본주의적 마인드를 타고난 로빈슨 크루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기본소양(먹고살기 위해서는 일해야 하며, 일하지 않는다면 굶어죽을 것이고, 이것은 유사 이래 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법적 제도적 장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의 역사에서 경제가 사회와 독립된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19세기의 역사를 “거대한 변형”이 일어난 시기로 파악한다. 사회의 하부구조인 경제가 의도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얻게 됨으로써, 시장 외부의 통제를 배제하고 모든 상품은 가격에 의해 조정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발생한 시대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3가지 허구적인 상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바로 노동, 토지, 화폐이며, 이들의 가격이 바로 임금, 지대, 이자이다. 이 3가지 상품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상품으로 인식된 적이 없었고 그러한 것은 금기시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동은 인간 자신이며,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시장의 논리에 맞서 사회전체의 장기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는 법적 제도적 틀(공장입법, 토지관련 법률, 농업관세, 중앙은행 등 관리통화체제)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라 한다.
폴라니는 19세기의 역사를 “규제되던 시장”이 “자기조정 시장”으로 변모하는 “거대한 변형”이 일어난 시기였으며, 시장의 자기조정운동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라는 이중운동(Double Movement)이 치열하게 일어났던 시기라고 정리한다.

폴라니는 2차대전 직후 이 책의 후반부인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를 쓴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에 다름아니었던 제국주의에 의해 1차대전이 일어났고, E.H.카와 케인즈가 그토록 반대했음에도 베르사유 체제는 제국주의 시대로의 복귀를 결정한다. 당시 케인즈는 유럽인들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던 자유방임주의라는 괴물과 금본위제라는 미개시대의 유물에 절망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황과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전쟁직후 폴라니는 세계체제가 미국 주도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로 재편될 것을 염려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폴라니의 소련에 대한 순진한 옹호(?)가 엿보이는 이 글에서 당시의 영국노동당이 유럽대륙과 함께 지역적인 계획경제 블록을 형성하여, 전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의 복구를 노리는 미국과 거리를 둔 채 독립적인 노선을 걸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인류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여, 영국은 그의 바램과는 반대로 미국의 하위체제로 편입되어 버렸고, 아쉽게도 현재 전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는 훨씬 공고하게 복구된 듯 하다. 현재의 이라크전쟁을 보면서 또 하나의 세계대전을 상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칼 폴라니는 경제인류학 분야에서 이미 확고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이 인류학 분야에만 국한되고 경제학에서의 영향력이 보잘것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인류사회가 자본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나 인격적인 공동체로 나아가야 함을 일관되게 주장한 칼 폴라니의 사상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어리석은 인류에게 해야 할 많은 숙제가 남아있음을 암시해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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