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북마크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일까, 아니면 변명일까?
「암흑의 핵심」(조셉 콘래드, 민음사, 1998년)

자일리톨 /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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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조금 늦게까지 남아있던 형이 교수가 수업시간에 읽혔다며 책을 한권 보여줬다. 그것이 “암흑의 핵심”이다. 예전에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서 원작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 봐야지 하며 시간을 내어 읽어보았다.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는 콘래드의 번역본은, 민음사가 고전은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며 재번역을 추진한 결과로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제인 Heart of Darkness를 종래의 “어둠의 속”에서 “암흑의 핵심”이라는 좀 더 뽀대나는 제목으로 바꾼 것 이외에 나아진 번역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고루한 단어의 선택하며, 페이지마다 어투도 왔다갔다하는 등 이런 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화려한 이력을 가진 옮긴이가 아마도 한국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_-;;

어쨌든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선장 찰리 말로가 조그만 증기선을 타고 아프리카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 커츠라는 사내를 데리고 나온다는 얘기다. 현대의 많은 비평가들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야유가 주제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1899년에 씌어진 소설답게 그 주제가 그리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의 지배를 미화하는 표현이 엿보이는 등 상당히 애매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영국인 찰리 말로는 6년 이상 선원으로 일하며 태평양, 중국해 등지를 떠돌아다니다가, 지도상 여전히 검은 여백으로 남아있던 아프리카 내륙으로 가보기로 한다. 나름의 정치적 수완이 있던 친척의 주선(?, 옛날에도 여전히 빽이란 중요한 것이었다.-_-ㅋ)으로 콩고강을 운행하는 증기선 선장으로 임명된 말로는 내륙주재소에 나가있는 커츠라는 인물을 데리고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말로가 아프리카에서 목격한 유럽인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찌는 듯한 밀림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겠다며 세관원을 들여보내는가 하면, 그 세관원을 보호한답시고 이번에는 군인들이 밀림으로 떼로 몰려가 무료하게 허공에다 포사격을 해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어나가고, 그러면 본국에서 세관원과 군인들 한 다스를 또다시 보내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제정신인 사람들도 미쳐나가게끔 만들었는데, 닭 2마리 문제로 원주민 추장을 두들겨 패다가 창에 찔려 숨이 끊어진 스웨덴인 선장의 후임이 바로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말로가 데리고 나오기로 되어 있었던 커츠라는 인물도 그 상황에서 미쳐버린 경우에 속했다.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미개인(?)을 개도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밀림으로 들어간 커츠는 곧 모든 미개인을 절멸시키라고 부르짖으며,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정확히 씌여있지는 않지만) 흑인들을 이끌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건 커츠에 대한 서구인의 시선이다. 그들의 커츠에 대한 시선은 “주목할 만한 인물” 내지는 극악무도한 미치광이로 극명하게 나뉜다. 커츠가 그곳으로 오기전 서양인들이 말하는 아프리카인들과의 정당한 교역이란 쓸데없는 구슬, 구리철사 등을 들여와 고가의 상아와 바꾸어 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때 총이나 대포가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커츠는 그러한 교역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을 교화하는 것이 유럽인의 책무라는 거의 절대적인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원주민들의 목을 잘라 본보기로 삼는 등 노골적인 약탈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 말로도 그러한 행위가 약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 행위에 대한 신념을 가진다면 그러한 행위들도 용서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행위가 아닌가... 이 불미스러운 행위를 대속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지.”

그리고 커츠는 바로 그러한 신념을 철저히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주인공 말로는 커츠에 대해 애증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며, 커츠가 밀림에서 죽은 후 그의 약혼녀에게 커츠의 본모습을 감추고 우상화시키는 등 거짓말을 늘어놓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은 제국주의 시절,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종차별주의에 물들어 있으나, 어느 정도의 인간적 양심도 지녔던 전형적인 유럽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만하다. 주인공의 시선에는 아프리카인을 친구, 식인종, 미개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글쎄...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자아의 절대적 앎을 성취한...” 등등을 외쳐대는 영문학자들에 의해 과대평가된 면이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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