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달콤쌉싸름한페미니즘
볼 꺼리를 제공하라?
가부장적 시선 속의 여자 스포츠 선수들

해송 / 언니네트워크   heasong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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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주의자들은 봄볕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여성영화제’를 기다린다. “카메라를 든 여전사”들이 기록해낸 수많은 여성들의 역사는 아무리 다른 시공간의 그것이어도 ‘희한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 준다.
올해도 여러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그 중 미쉘 아보로(Michele Aboro)라는 여자 권투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란 영화를 중심으로 말문을 열고자 한다. 이 영화는 가부장적 시선이 작동하는 소위 ‘시장 경제’에 의해서 여자 프로 권투선수들의 실력이나 자질이 어떤 과정을 통해 누락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지 잘 보여준다. 운동을 하는 여자 선수들의 몸이 ‘여성의 몸이 전시되는’ 맥락 속에 들어가면서 하나의 상품이 되어, 그 속에서는 실력이나 자질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영화 속 그녀의 삶의 모습은 ‘영국에 있는 소수 인종 레즈비언 권투선수’라는 한 사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누가 그녀를 아웃 시켰는가?
미쉘 아보로는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던 프로 권투 선수로서 21전 21승 0패 13KO승이라는 놀라운 전적을 올린다. 이렇게 잘 나가던 와중에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은퇴를 강요당한다. 미쉘이 속해있던 프로모션에서는 그녀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퇴를 강요한 것이다. 21전 21승 13KO승이라는 권투선수로서의 그녀의 기록이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스포츠 ‘시장’에서 여자선수에게 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에서 그녀는 도발적인 화장을 하고 ‘여자’ 선수에게 어울리는 강하면서 섹시한 포즈를 취한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권투선수’로서의 자의식과 소신이 발동한 순간,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인정한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선수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스포츠 산업, 특히 미디어 스포츠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 선수는 ‘볼 꺼리’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여성 선수는 ‘볼 꺼리’ 이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스포츠 자체의 목적이 볼 꺼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여성 선수를 전시하는 맥락은 남성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진짜’ 경기라 간주되는 남자들의 스포츠에서는 경기 내용, 즉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나 기술이 볼 꺼리가 되는 반면에, 여자 선수들의 경기는 경기 외적인 요인이 주가 되어왔다. 그녀들은 경기 중에 항상 미소를 지을 것을 강요받고 국가대표 여자 선수들의 소식엔 언제나 태극 ‘낭자’라는 제목이 따라 붙는다. 낭자라는 말의 뜻은 남의 ‘집’ ‘처녀’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란다. 왜 여자 ‘선수’들이 ‘남의 집 처녀’로 호명되는가? 여자 선수들은 암만 개인적 한계를 극복하고 어떤 경지에 올라도 ‘뉘집 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선수’로서 필요한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자’ 선수로 자신의 몸을 전시해야만 한다. 실력보다는 외모가 뛰어난 선수를 미디어에서 두드러지게 부각시킴으로써 여자선수에게는 외모가 선수의 능력을 가르는 평가 기준이 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스포츠 선수들은 기능성이나 효율성 보다는, 몸에 딱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고 몸을 전시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준수해야 한다. 이러한 스포츠계의 규정과 사회적 시선들은 “이것이 바로 너희의 역할이다”를 쉴 새 없이 주지시키고 있다.
‘평등한 스포츠 정신’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여자 선수/여성 스포츠를 둘러싸고 있는 성별 정치학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여자’가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자가 운동을 ‘잘’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반문하고 있다. 미쉘 아보로는 경기장 안에서는 많은 상대 선수들을 KO, 아웃시켰지만, 정작 사회에 의해 아웃되었다.

‘여자’임을 증명하거나 부정하거나
‘뻗어 버리다’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
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밀리언달러 블랙 다이크>라는 한글 제목이 붙었다. <밀리언달러 블랙 다이크>로 번역이 된 것은 얼핏 보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의식한, 원제와는 별 상관이 없는 번역 의도 같지만, 이 제목에서도 여성과 스포츠의 부조화를 증명하는 정치학을 살펴볼 수 있다.
스포츠, 특히 힘/근력과 관련된 운동에 ‘정상’적인 여성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다. ‘정상’적인 여성은 서구의 맥락에서 백인 이성애자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가진 권투선수 미쉘이 ‘소수인종’ ‘동성애자’라는 것은 여성과 스포츠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을 안심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자 운동선수들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도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차세대 스트라이커라 불리는 여자축구선수에 대한 질문 중에 “진짜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은 여지없이 등장하며, 기자들은 여자 선수를 향해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녀에게 ‘정상’적인 여자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의 유명 여자 육상선수가 염색체 검사를 통해 실제는 남자임으로 판명 났다는 기사를 내보내며, “우리 주변의 여자 선수도??”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처럼 과격한 운동을 ‘잘’하는 여성이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질 리 없다는 의심의 시선들은 여성이 스포츠계에서 결코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여자’와 안 어울리는 스포츠를 하기 위해서 여성 선수들은 ‘완벽한 여자’임을 증명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든가, 아니면 사실 ‘여자’가 아님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나는 미쉘 아보로가 더욱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자료들이 검색된다. 그 중 ‘그녀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적이 없다’는 한 줄의 기사가 유독 눈에 띈다. 실제 그녀는 은퇴를 한 적이 없다며, 여자이기 때문에 경험해야했던 일련의 차별들에 대한 소송을 제기중이라고 전한다.
“나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는 미쉘의 이야기는,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근력을 키우기보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농구선수, ‘고등학교만 졸업한 선수는 실업팀에 진출할 수 없고 대학에서 최소한 2년을 뛰어야 실업팀에 진출할 수 있다’는 여자축구연맹의 이해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대회 출전 정지라는 징계가 내려진 한 여자축구선수(**)의 모습, 단지 야구가 하고 싶어서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오는 야구 동호회의 내 친구의 모습과 혼재된다. 운동선수로서 단지 경기가 하고 싶은 미쉘의 소박한 소원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1. 1998년 국제 배구연맹은 세계적으로 침체된 여자 배구의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어깨와 히프의 상당 부분이 드러나고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새 규정을 만들어 각국에 통보했다. 이후, 이런 '섹시한' 유니폼을 "야하다"고 따르지 않는 나라의 배구팀에게는 벌금이 부과되었다. 국내에서도 이 규정에 따라 99년 배구리그에서부터 여자선수들이 몸에 꽉 끼는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동아닷컴, http://www.donga.com/docs/physedu/sportsstory/166.html) 이러한 규정은 거센 반발에 부딪쳐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