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호 김칠준의
소수자의 인권과 사이버 세상

김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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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세상은 소수자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약속의 땅인가, 아니면 질곡의 삶을 확대 강화시킬 뿐인가.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사회적 소수자들은 곳곳에서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회체제에 억압받고 차별 당하면서도 숨죽인 채 살아왔지만, 이제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청소년, 장애인은 물론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에이즈환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은 정보를 나누고, 아픔과 위로를 나누며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이버 행동을 통해 목소리를 합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냈던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이러한 움직임에 당황하고 있다. 아직 '다를 권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이들의 움직임을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혹시 사회불만세력이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나아가 새로운 입법을 통해서 감시를 제도화하려고 한다. '불온과 유해'라는 이름의 사회적 잣대로 각종 사이버 공동체에 등급을 매기고, 사이트 앞에 '나는 불온하다'라는 주홍글씨를 달도록 강요한다. 불온과 유해의 판단기준은 사회적 통념이다. 결국 우리사회는 사회적 통념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세상에서 이들을 배제시키고 고립시키며 심지어 폐쇄하고 있다. 그리고 엑스존 사건에서처럼 이러한 행위가 버젓이 법원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우리사회에서 소수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수자란 단순히 숫자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이자 지배질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말한다. 인종, 언어, 성, 문화, 가치관, 경제적 지위의 차이로 인해 지배계층과 갈등하면서 억압받는 세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사회에 대해 자신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인간임을 말하고 싶어하고, 부당한 억압과 차별로부터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쟁취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항상 국가안보나 사회질서라는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반영한 법적 규제 장치를 동원에서 이들을 구획하고 통제하며 침묵시키려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상식이나 통념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낙인찍고, 이를 통해 스스로 주눅들게 만들거나, 불특정 다수로 하여금 마녀사냥식 통제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근원적이며 포괄적인 억압장치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다. 사실 사회적 통념은 대단히 모호하고 불확실한 개념이다. 오히려 다수가 지지하고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것은 아무런 근거 없이 '건전한 상식'으로 포장되어 소수자를 구획하고/ 낙인찍고/ 배제하고/ 방치하고/ 차별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 때로는 집단적 광기를 발휘하거나 '사이버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수자의 인권운동은 늘 사회적 통념(편견)과의 싸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고, 지금의 사이버 세상은 바로 이 싸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쟁터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릇 인권은 소수자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지배질서로부터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천적인 이념이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은 소수자의 사고, 취향, 이익을 권리로 재구성하고, 법적 원리로 체계화시켜 보편적 호소력을 얻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기존의 사회질서는 늘 인권운동의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도전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사고와 관점을 포용하는 인권세상으로 변화하게 되며, 결국 전체구성원을 위한 사회로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먼저 깊은 감수성으로 소수자들의 의식과 처지를 이해하고,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연대함으로써 인권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들이 사이버세상에서 소수자 인권을 위한 싸움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면, 정보인권운동가들도 당연히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사이버세상에서는 동성애자, 지문날인거부자, 병역거부자, 장애인, 성폭력피해자, 백혈병환자, 학교폭력피해자, 외국인노동자 등 많은 소수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음지에 갇혀 있던 소수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양지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게 하며, 당당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통념이라는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사회가 그들을 가두었던 구획을 하나씩 허물어 가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을 매개로 소수자들의 생각과 정서가 온 사회에 스며들어와 '다름'이 서로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공존과 교류의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통념 속에 반인권적인 편견과 무의식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사이버세상에서도 소수자들의 저항에 동참하고 연대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저항과 불복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법제도가 지배질서에의해 장악되어 있어서, 소수자가 자신들의 요구를 법제도에 반영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전철을 세우는 저항을 하게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징역살이를 감수하면서 불복종을 전개한다. 물론 무언의 지지가 소수자에게 힘이 될 때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저항과 불복종에 동참하는 것이 소수자 인권을 위해서는 더욱 필요하다. 사이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소수자들이 인터넷등급제에 의한 낙인찍히기를 거부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검열과 삭제를 거부할 때, 우리도 함께 거부해야 한다.
이 때 비로소, 사이버세상에서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사라질 것이고, 그것은 오프라인 세상을 인권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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