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표지이야기 [게임등급제 논란 : 산업발전 vs 청소년보호?]
게임법 시대의 개막과 새로운 게임물 등급분류제도

최승훈 / (사)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실장   shchoi@game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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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게임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진흥법)’이 공표되었다. 진흥법의 입법은 게임산업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입법이 아닐 수 없다. 90년대 후반 이후의 외향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그 동안 적어도 법․제도의 영역에서는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산업과 문화의 성장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을 주어로 하는 게임법 시대의 개막이 게임 산업과 문화를 둘러싼 법제도 환경을 근본적으로 발전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게임법 시대 개막
진흥법은 게임산업의 복잡성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이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단연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와 관련한 내용일 것이다. 진흥법의 등급분류제도는 구법인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아래 음비게법)‘과는 상당히 다른 등급분류제도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새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공표된 새 법과 정부가 발표한 하위법령 제정 계획(안)을 살펴보면, 그 동안 게임물의 등급분류를 담당해 왔던 영상물등급위원회(아래 영등위) 대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설립되고, 등급보류제도가 폐지되며, 온라인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제도가 정비되고, 연령등급제 외에 내용기술제가 도입되고, 자율등급분류제도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등 등급분류 제도 전반에 걸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등급분류제도, 제작 및 수출국형으로 전환 필요
게임물의 제작 및 이용 환경의 변화에 따르는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의 개선 방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게임물 등급제도에 대한 입장을 밝혀 보고자 한다.

새로운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는 무엇보다 소비 및 수입국형에서 제작 및 수출국형 등급분류제도로의 전환을 통해 게임물 제작과 이용에 있어 창의성과 자율성을 확대하는데 제도 개선의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국가와 제작하는 국가, 수입하는 국가와 수출하는 국가의 등급분류제도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등급분류제도의 관심이 유해한 콘텐츠를 걸러내는데 있다면, 후자의 등급분류제도는 콘텐츠의 제작과 이용에 있어서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중국의 게임물 수입허가제도와 일본의 CESA 등급분류제도를 떠올려 보면 이러한 차이는 쉽게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비게법과 영등위가 소비 및 수입국형 등급분류제도를 운영했다면, 새 법과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방향은 제작 및 수출국형 등급분류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음비게법과 영등위의 게임물등급분류제도가 만들어졌던 90년대에는 한국 게임산업이 국내의 제작기반 없이 일본, 미국 등 해외의 게임물을 수입하여 유통시키던 소비 및 수입국형 산업구조였지만, 2000년대의 한국 게임산업 환경은 내수 시장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제작된 게임물이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출의존도가 40%에 육박하는 제작 및 수출국형 산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등급분류제도는 당연히 이러한 산업 및 이용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서 새 등급분류제도의 변화는 일단 긍정적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설립은 등급분류의 전문성을 제고할 것이고, 등급보류제도의 폐지와 자율등급분류제도의 도입은 제작과정의 창의성을 확대할 것이며, 내용기술제의 도입은 게임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보다 더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심의권자의 권한 개선 등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행정의 개선도 눈에 띈다.

게임물 검열의 위험성 잔존
반면,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독립성 등 법적 지위 문제, 이용불가제도와 유사한 사행성게임물 결정제도의 존재 등 기존 음비게법과 영등위의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에서 ‘검열’의 위험성이 지적되었던 문제가 완전히 불식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구성 및 인사 권한이 문화부장관에게 부여됨으로 인해 그 법적 독립성 및 지위에서 영등위보다 취약해진 측면이 있고, 비록 이용불가제도는 형식적으로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사행성 게임물 결정제도가 대신하고 있어 새 심의제도 역시 위헌성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전망이다.

한편 새 등급분류제도는 제작 중인 게임물과 제작 후 수정된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게임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다른 나라의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소스가 다중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최근의 시장 환경을 감안할 때, 패키지 게임물에 적합한 사전등급분류제도에 온라인게임의 특성을 접목시키는 실험적인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령불일치의 문제로 인해 이중심의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청소년유해매체물 제도와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의 충돌 문제가 새 법과 새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밝혔듯이 게임물의 제작과 유통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규율하는 환경의 조성이 새 법과 새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의 궁극적인 입법 취지라면, 심의제도의 이중성 문제를 과감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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