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5호 북마크
때맞춰 잘 나왔다.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낯선 식민지 한미FTA」(이해영 지음, 메이데이, 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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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정부의 뜬금없는 한미FTA 추진발표는 온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전부터 FTA 지각생이라며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의 당위성을 홍보해온 보수언론들의 분위기조성 노력이 있긴 했지만, 그날의 발표는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다.
97년 말에 터진 동북아외환위기는 우리들 삶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정작 우리들은 당시 IMF 구제금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향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간의 구조조정기를 헤쳐 나온 사람들의 내공을 봐서라도, 이번만큼은 한미FTA로 호되게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게 요즘 내게 드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공중파 TV들이 미친 듯이 월드컵만을 외쳐대고 있는 마당에 FTA관련 다큐멘터리(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의 암울한 사회변화를 다룬 필름)가 방영될 수 있었던 사실이 고맙고, 인터넷신문에서 한미FTA 관련 특집코너를 만들어주는 것이 반가웠으며, 이해영 교수가 「낯선 식민지, 한미 FTA」라는 책을 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본의 아니게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은 그만큼 시의적절하게 나온 듯하다. 국제관계를 전공한 이 학자는 경제학, 그 중에서도 전문적인 통상현안 문제를 매우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최대한 도표와 수치를 친절하게 인용함으로써 객관적인 톤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미FTA 체결이전 단계에서의 4대 현안문제 (약값재조정, 스크린쿼터, 차량배기가스규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청와대와 관변단체에서 반복해서 외치는 일반균형모델(CGE)논란, FTA 체결시 제조업, 서비스업, 투자, 지적재산권, 농업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차례로 서술하고 있다.

사실 이번 FTA협상에 나선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숨기는 것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이끌려 협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4대 현안 문제를 적절히 이용하여 미국에게 얻어낼 것을 보다 확실히 얻어내는 등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4대 현안을 미국측의 요구대로 넘겨준 뒤 국내의 반발에 부딪히자 “4대 현안과 FTA협상과는 관련이 없다. 4대 현안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넘어가야 할 통상현안이었다”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재벌, 특히 일부 수출대기업의 로비를 받은 관료마피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팔아치우려 한다는 데 있다. 미국에게 한미FTA는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는 축에 드는 대형프로젝트이지만 중장기 과제로 분류되곤 했었다. 이토록 협상이 앞당겨진 데에는 한국관료가 보따리를 싸들고 애걸하여 추진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국민위에 관료가 있고, 그 위에 재벌이 있으며, 그 위에 삼성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한미FTA를 찬성 쪽에서 단골로 내놓는 추진근거는 한국 제조업의 수출이 확대된다는 것과, 우리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신규 고용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소싱을 통해 현지생산 및 수출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력수출품목(자동차, IT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워낙 낮아 제조업의 수출확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한, 가장 큰 수혜업종으로 분류된 의류제품은 원사이전 단계부터 원산지를 정하는 미국의 까다로운 규정으로 수출증대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라 한다.
게다가, 서비스업과 농업은 미국과의 생산력 격차가 극심한 분야이므로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겠다며 금융개방을 했지만, 선진노하우의 전수가 이루어지기는커녕 금융의 공적중개기능이 약화되고 금융서비스 접근이 양극화된 사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기간 연장(50년→70년), 이행의무강제금지 조항, 투자자의 국가에 대한 제소권 보장 등 독소조항을 삽입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려하고 있다.

요즘 여당 내에서도 한미FTA의 졸속추진에 반대하는 미묘한(?) 움직임이 일고 있고, 공청회 개최를 통해 한미FTA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밀실에서 그들끼리 이루어지는 야합이 아니라 FTA가 우리 일상과 맞닿아있는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갖게 하기 위해, 이런 시의적절한 책이나 방송, 언론기사가 지속적으로 나와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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