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5호 만화뒤집기
장모씨의 상상력 대 바퀴벌레의 상상력 그리고 만화의 상상력 !
장모씨 이야기-그와의 짧은 동거 (장경섭/길찾기)

신성식 /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toonor@jinbo.net
조회수: 4486 / 추천: 76

내가 만화를 시작한 게 95년 만화를 배우면서부터니까 올해 햇수로 11년째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만화를 시작하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해서 지금의 우리만화연대가 열었던 출판만화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하지만 내 짧은 만화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회당 3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엄청난 과제를 제대로 소화하기위해 나머지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써야만 했다. 따라서 내겐 일주일 내내 다닌 셈이었다. 저녁 늦게 수업이 끝나면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만화 얘기꽃을 피웠는데 만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내게는 듣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되었다. 지금에야 미야자키 하야요나 오시이 마모루를 모르는 이가 별로 없지만 당시의 나에겐 참이나 낯설었다. 사실 그만큼 재미있었다.

그 당시 30명의 동기 중 나이 많은 순으로 네, 다섯 번째 정도였다. 20대 중반이 가장 많았고 초반도 적지 않았다. 같이 놀면서(?)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나를 괴롭게 한 게 있었다. 매월 한편씩 작품을 하고 평가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동기들의 작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참 놀라운 상상력이야’, ‘참 대단한 감각이야’…
젊고 싱싱한 감각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나보다 나이 많은 동기들에게는 그런 생각은 덜했다는 게 위안이 될까. 그렇더라도 다들 만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꼭 그만큼 앞서 가는 것만은 역시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당시에 나를 자극했던 동기 중의 하나가 바로 장경섭이다.

‘장모씨 이야기’라는 게 이 책에는 마치 부제처럼 되어있지만, 실제로 바퀴벌레 얘기가 장모씨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96년 2월에 만화 학교를 마치고 몇몇 선배 만화가들과 함께 <저예산 독립만화지 월간 화끈>을 만들 때 시작된 장모씨 이야기는 모노드라마라고나 할까, 혼자 다하는 꽤나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 나에게는 역시 그의 상상력이 부러웠다. 그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상대적으로 나의 이야기는 너무나 평범했다. 굳이 만화로 그릴 필요 없는, 그냥 글로 써도 되거나 얘기하면 그만인 그냥 그런 정도였다.

여기서 만화적인 상상력이란 대체 뭘까? 만화만의 상상력? 통계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영화감독이나 벤처 대표, 바둑 기사, 소설가 등등 아무튼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는 유명인들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에 만화를 많이 봤다는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만화와 상상력은 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화라고 할 때 그들이 봤다는 만화가 그야말로 작품성이 뛰어난 대작들만을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에도 불량이요 저질이라고 지탄을 받았던 만화들, 심지어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평을 받는, 또는 그냥 쉽게 만화방에서 볼 수 있었던 만화들이 대부분이리라. 물론 좋은 작품도 포함해서. 그렇다고 하면 좀 무리한 확장이지만 양질이든 저질이든 만화는 일단 상상력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교육심리학에서는 만화(시각적 이미지)가 글자(문자)에 비해서 학습효과가 탁월하므로 모든 교과서를 만화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화를 꼭 잘 그려야 할까? 막 그린다는 건 좀 그렇더라도 요즘에 유행하는 일본 만화들처럼 미소년, 미소녀를 이용해서 (거의 설계도 쓰듯) 이야기만 잘 짜서 그려도 되는 것 아닐까?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관점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이자, 미학의 문제이자, 뭐 그러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방점이 찍혀있는 것은 좋은 그림, 좋은 이야기이다. 특히 이야기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물론 현실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주제 자체에도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장경섭 작가의 작품은 인정받을 만하다. 게다가 그의 그림 또한 만만한 실력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특히 어두운 장면, 비가 내리는 장면 등의 묘사(불행하게 이 책에는 없다)를 좋아한다. 이 작품에선 특히 눈 내리는 장면, 작업실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장면이 참 좋았다. 이야기(내용)에 대해서 나의 건조한 상상력으로는 적당한 표현들을 떠올리기 힘드니 여러분들이 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정말이다. 잘 아는 사이라 책 팔아 줄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부정할수록 더 의심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 책에서 아쉽다면 그간 보지 못했던 신작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점인데, 다종다양한 만화들이 암중모색 끝에 서점 진열대에 꽂혀도 팔리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 무작정 찍어내라고 하기가 조심스럽다. 작가들이 좀더 치열하게 고민하시고 작품해 주시길, 그래서 돈도 많이 버시고 그러시길 바랄뿐이다.

한 2년 전 겨울에 둘이 술 먹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만화 그리는 게 너무 힘들어, 어려워”, “맞아 장난이 아니야”

현재 장경섭은 계속 작품하고 있고 신성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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