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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프로젝트팀/2006/110분

시와 / 영상미디어 활동가   fjt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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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소개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올해 초,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일군의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영화 감독들이 모여 지난 5월에 일군 프로젝트로서, 1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퍼져있는 광기의 정도를 가늠케하는 한미 FTA를 비롯하여, 대추리, 새만금, 줄기세포, 카지노, 비정규직, 양심적 병역거부, 사학법, APEC, WTO 등 이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영역은 실로 다양하다. 시기적으로 작년 말과 올해 유난히 도드라졌던 이 사회 곳곳에 산적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변화를 위한 행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데에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독립영화인 프로젝트>에 이어 현 시기 이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과 연대하려는 독립영화인들의 의지가 표출된 공동 프로젝트라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올 초부터 운동진영 안팎에서 한국사회를 강타할 뜨거운 문제라고 지목되었던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로부터 시작한다. 한미 FTA 토론회 자리에서 오갔던 공방을 담은 영상과 이의 문제점을 분석적으로 제시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주축으로,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을 야기할 한미 FTA의 졸속적인 추진 과정을 비판한다. 이어 수많은 생명체와 어민들의 풍요로운 생활터전인 새만금 갯벌을 황폐화시킬 끊임없는 시도에 몸으로 노래로 맞서는 올곧은 사람들의 저항을 담은 영상 2편이 등장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축축한 속내를 여과 없이 상징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다소 다르게 접근한 세편의 작품도 주목할만하다. 감각적인 컷편집과 음악이 인상적인 <또다시, 봄>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생활하는 감독 누나의 일상을 소박하게 그렸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처했던 노무현 정권이 야기한, 울분과 한이 서린 절박한 투쟁의 현장을 방대한 영상클립들을 동원하여 보여주는 영상이 연이어진다.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많은 투쟁현장을 찾아갔던 인터넷 언론인 제작 주체의 역량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지난한 싸움을 다룬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촬영, 나레이션 등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제작 참여가 두드러진다. 사학법 개정논란,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킨 황우석 사태, 병역거부 등 평소 관심 갖고 작품을 제작해 온 주제를 이번 프로젝트에 녹여낸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작년 하반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물결을 주도했던 부산 APEC과 홍콩 WTO 반대 투쟁을 담은 영상들, 지역에서 추진되는 경마장과 카지노 사업 과정을 비판한 영상에 이어, 여전히 절실한 연대가 필요한 평택 대추리 현장에서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된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무엇보다도 짧은 제작 기간, 넉넉하지 못한 인적, 물적인 환경에서 카메라 너머, 스크린 밖의 역동적인 현실과 상호작용을 기대하며, 많은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영화 감독들이 소중한 마음을 모아 만든 성과라는 점에서 값지다. 더불어 운동과 영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 지으면서 분명한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작품을 영화가 아닌 운동에 복무하는 수단으로서만 간주하는 일련의 ‘지적’들이 존재하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영화로 운동을 지속하려는 공동행동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역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미쳐가고 있다”는 선언적인 문제의식 하에서 각 작품들이 제작되었는데, 하나가 둘이 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상승효과를 프로젝트에서 획득하지 못하여 이의 자체적인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또한 작품의 주제와 감독의 제작의도가 겉도는 일부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16개의 단편들 중 14개의 작품이 다큐멘터리 장르인 것에서 드러나듯, 많은 편수의 작품이 프로젝트를 이루었지만 다채로운 형식적 실험을 만나보기란 어렵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프로젝트가 완성된 5월부터 바삐 서울, 지역 순회상영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 상영관을 만든 것은 물론, 무료로 다운로드는 받을 수 있게끔 원칙을 정하여 프로젝트의 취지에 걸맞는 배급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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