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사이방가르드
저항과 상품 문화의 은밀한 거래꾼, 마크 에코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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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코(Mark Ecko)하면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너무나 잘 알려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그라피티 예술가로 활동하다, 의류 사업에 뛰어들면서 젊은 층 중심으로 캐주얼 패션을 주도하는 현직 디자이너로 급성장했다. 그는 일곱 개의 패션 브랜드와 잡지 사업을 확장하며 에코기업을 일궜다. 그런 그가 올해 2월에는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아타리와 손을 잡고 <궐기: 억압받는 콘텐츠 (Getting Up: Contents under Pressure)>란 게임 타이틀을 전 세계에 출시했다. 이 게임은 국내에서도 18세 이상 등급으로 올 6월에 출시됐다.

국내에선 그저 여러 게임 중 하나로 배급된 것과 달리, 여러 나라들에서 에코의 게임이 청소년 범죄를 충동한다하여 부정적 반응이 거세게 일었다. 게임의 배급을 막으려는 조직적인 노력도 이뤄졌다. 예컨대 뉴욕 시장 블룸버그는 그 비디오게임 출시에 맞춰 이뤄진 에코의 맨하튼 시내 기념행사를 저지하려 했고, 로스앤젤레스와 플로리다 주에선 아예 이 게임의 유통을 금하자고 정치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영국에서도 이 게임을 막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 경주된 적이 있다. 호주는 아예 그 유통을 막아버렸다. 에코의 게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리도 여러 국가들에서 한사코 손사래를 쳤을까?

무엇보다 게임의 주제가 문제였다. 여러 도시나 국가들에서 에코의 게임이 사전 검열을 받았던 첫 번째 이유는, 그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그라피티를 학습시킨다는 이유였다. 그라피티하면 한국말로 벽낙서 정도로 해석된다. 스프레이, 페인트, 스텐실, 스티커 등을 이용해 권력의 장소나 건물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거나, 그도 아니면 동네 담벼락에 남몰래 그려진 익명의 이미지들을 지칭한다. 이미 물리적 그라피티의 흔적들을 박박 지워 없애는데, 한 해 런던 시예산만 하더라도 260만 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니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뉴욕 등지에 도시 행정당국자들의 청결한 도시 위생을 위한 노력에서 보자면, 그라피티는 시 예산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좀도둑질과 같았다. 그라피티로 인한 재정 부담에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다, 청소년들의 낙서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는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니 각국 시정부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에코의 <궐기>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그라피티 혁명가, 트레인(Trane)을 대리하여 게임을 수행한다. 트레인은 가공의 부패한 도시를 배경으로 자신의 영역을 그라피티로 표시하며 확장하고, 그를 막으려는 도시의 악덕 시장과 폭력적인 경찰당국에 대항해 싸운다. 에코의 게임에는 이렇듯 정의와 부패의 대당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정의는 트레인과 같은 영웅과 그를 돕기 위해 출현하는 가상의 인물들, 그라피티 예술가들이다. 실지 이 게임에는 트레인을 훈련시키는 실존 그라피티 영웅들이 등장한다. 80년대부터 뉴욕 지하철 페인팅으로 이름을 날렸던 코우프(Cope)2, 티-키드(T-Kid), '복종'(Obey) 시리즈 스텐실 판화의 대가 씬(Seen) 등과 같은 전설적인 그라피티 예술가들이 출현한다. 반대로 부패는 가공의 도시를 장악한 시장과 경찰서장의 폭력적 지배에서 나온다. 비록 가공이긴 하나 거의 뉴욕시를 연상시키는 게임의 무대는 당연히 블룸버그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초반부터 시 당국은 과격한 '정치적 행동주의'를 유도하는 에코의 불순한 게임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필자도 미국 언론을 통해 익히 그 비디오게임 내용의 선동성에 대한 논란을 접하고, 자못 궁금증이 생겨 최근 비디오 게임 가게에서 엑스박스용 타이틀을 구입해 놀아본 적이 있다. 그러나 놀아보니 사태는 상당히 다르다. 이미 게임에 몰두하다보면, 플레이어는 그라피티를 배우고 정치적 자각을 하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시 당국의 우려와는 달리, 조이스틱의 반복 버튼을 통해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하고 벽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비디오게임의 규칙은 크게 다를 게 없다. 큰 틀에서 에코의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코는 영리하다. 우탕클랜의 리더인 RZA나 MC 라킴과 같은 강성 레퍼들에게 배경 음악을 부탁하고, 그라피티의 영웅들을 캐릭터로 집어넣고, 적절히 정치적 맥락을 자신의 게임에 가미시키고, 이용자가 직접 그려 넣는 그라피티의 예술적 묘미와 그 정치적 급진성을 부각시켰다. 아이러니하게 게임이 출시되기도 전에 보여준 시 당국자들의 흥분은 에코에겐 광고 없이 거저 게임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기회가 됐다. 그의 새로움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결합하여, 전자의 위치를 주변문화에서 대중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이다. 반면 그의 위험성은 이를 통해 소위 언더그라운드 저항의 가치를 현대 자본주의의 상품체계 안으로 쑤셔 넣는데 있다.

일전에 소개했던 영국의 스텐실 그라피티 예술가인 뱅씨(Banksy)는 그의 정치적 작품들이 주류 예술계에 크게 알려지면서 소위 전시예술에 의해 포섭되고 박제화될 위험성을 보여주었으나, 반대로 에코는 철저하게 장사꾼의 길을 걸으면서 급진적 저항의 기획을 돈벌이로 각색하는 일에 천착한다. 하지만, 에코의 이번 시도가 상당히 좌파예술가들에게 자극제가 돼야한다고 본다. 헐리웃 담론과 거대 자본에 의해 휘청거리는 비디오 게임의 질과 수준을 고려하면, 이처럼 청소년을 교육하는 정치 학습의 게임들이 재고될 필요가 있다. 소비를 조장하고 폭력의 배설을 자극하는 에코 게임의 부정적 면모를 걷어낸다면, 정치를 학습하고 저항을 기획하는 '신나는' 게임을 기획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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