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기획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국내 문화 산업에 큰 타격 우려
미국, FTA 협상에서 강력히 요구할 듯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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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에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미국의 강력한 요구 사항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망 후 50년’으로, 이는 관련 국제협약에 부합한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준 이상으로 강화하라는 것이다.
지난 1998년 미국은 자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시킨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싱가포르나 호주 등과의 FTA를 통해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미한재계회의와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 정책 보고서>에서도 미국 수준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왜, 보호기간을 제한하는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창작자의 배타적인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장치이다. 즉, 창작자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하여 창작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되, 그 기간을 제한하여, 보호기간 만료 이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복제, 출판 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한다면, 공공영역으로 편입되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이 그만큼 감소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1961년에 사망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들의 경우, 2011년이면 권리자의 허락이나 저작권료 지불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나,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되면 2031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보호기간 연장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보호기간 연장, 미국 문화기업에 거대한 추가 이윤 보장

미국이 자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를 강요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문화산업백서 2005』에 의하면, 전 세계 문화콘텐츠 산업의 4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문화콘텐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 라이선스 수입은 10대 캐릭터만을 보더라도 연간 252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1위는 그 유명한 미키마우스인데, 1년 매출액이 58억 달러(원화로 약 6조900억원)에 달한다. 2004년 한국영화 총 매출액이 기껏해야 2,854억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함으로써 미국의 거대 문화기업들은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막대한 추가 이익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보호기간 연장이 저작권자의 권리를 강화시키는 것인 만큼, 국내의 일부 권리자들은 보호기간 연장에 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강화와 맞물린 문화 시장 개방 자체가 국내 문화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국내 출판 시장은 거의 와해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5일,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한 9개 출판단체는 공식 성명을 통해 “지적재산권 문제는... 해당국가의 법 정책에 따라야 할 문제지 무역 거래의 조건이 될 수 없다”며, 지적재산권에 대한 한미 FTA 협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미국 문화자본의 로열티 회수 기간 확대를 위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한국의 출판 및 학문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김흥식 정책위원장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되면) 연 1000억~2000억 원 정도의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며, “20년이면 1조가 넘는데, 이는 한국의 출판계를 쑥밭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문화산업 전반에 큰 타격 줄 것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한미 FTA 저작권 분야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박성호 변호사는 “유럽과 미국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했기 때문에 우리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일축하며,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문화 수입국일 당시에는 저작권 보호 수준이 낮았는데, 문화 수출국이 된 이후에는 다른 나라에 높은 보호 수준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호기간 결정 문제는 한 국가의 법정책적 결단의 문제”라며, “이번 FTA 관련 협상에서는 현행 보호기간을 존속?유지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호주출장보고서에 의하면, 미-호주 FTA 협상에서 호주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에 끝까지 반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며, 호주는 협상 마지막 날 결국 이를 수용하고 말았다. 그만큼 지적재산권 강화는 미국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다. 그에 비해 지적재산권 이슈는 전문성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협상단이 협상 카드로 쉽게 양보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가 높다. 한미 FTA 협상 자체가 좌초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도 보호기간 연장이라는 디즈니의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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