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뜨거운감자
너무나 제한적인 '제한적 본인 확인제'

이혁 / 웹칼럼니스트   turnleft21@gmail.com
조회수: 7079 / 추천: 93
정부와 여당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막기 위해 포털이나 인터넷 미디어 게시판에 글을 올릴 경우 본인 여부를 확인토록 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일 방문자가 50만 명인 포털과 30만 명인 미디어 관련 사이트'는 '별도의 로그인과 본인확인절차 등을 통해 실명을 확인한 회원만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담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9월 국회에서 처리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대상 웹사이트의 현황
'제한적 본인 확인제'의 적용을 받게 될 포털과 미디어 사이트 중에서 실명제를 하고 있지 않은 사이트가 얼마나 될까? 적용 대상 사이트에 대해서 열린 우리당 변재일 정조위원장은 '올 5월 현재 방문자수 기준에 해당되는 포털은 17개, 인터넷 미디어는 12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음은 사이트 접속 순위를 제공하는 rank9.com을 방문하여 순위에 오른 포털 웹사이트 17 곳과 언론/미디어 웹사이트 12곳을 방문하여 가입 시 실명 확인을 하는지, 실명확인을 하지 않고 글이나 덧글을 쓸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정리한 표이다.

<표> 주요 포털과 언론/미디어 웹사이트 가입/글쓰기 실명확인 여부

*1.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본인 확인.
*2. 외국 야후 사이트와 통합 로그인 서비스 사용. 미국 야후에 가입하고 야후 코리아 웹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음.
*3. 마이크로소프트 통합 로그인 서비스인 패스포트를 사용. 실명 확인 자체가 없음.
*4. 전자우편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본인 확인

앞의 표를 보면 '제한적 본인 확인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29개 웹사이트 중에서 실명확인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이트는 EBS, MSN 코리아, 야후 코리아 뿐이다. 로그인 없이 덧글 작성이 가능한 웹사이트도 SBS, 머니투데이, 판도라 TV에 불과하다. 하지만 SBS, 머니투데이, 판도라 TV의 덧글 기능은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EBS, 야후 코리아, MSN 코리아의 로그인 정책과 SBS, 머니투데이, 판도라 TV의 덧글 정책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끼칠 뿐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3개의 웹사이트에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고, 3개의 웹사이트에 덧글을 쓸 때 로그인을 의무화 하는 것뿐이다.

적용 대상도 '제한적'이고 효과도 '제한적'인 '제한적 본인 확인제'
인터넷 실명제로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거나 줄일 수 있을까? 먼저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함으로써 자신의 신원이 공개될 수 있다는 압박감으로 표현이 순화되는 심리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사이버 폭력이나 명예 훼손이 이미 가입 시 실명 확인을 하는 대형 포털 위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실명확인으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되면 사이버 폭력이 발생했을 때 추적이 용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더라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외국에 있는 웹사이트의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경우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또한 "연예인 X 파일"과 같이 글이 게시판이 아니라 메신저라는 일대일 통신 채널을 통해서 퍼져나간다면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
악의를 가지고 고의로 사이버 폭력을 행사할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추적의 위험을 느낀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외국에 있는 블로그에 사생활 침해나 명예 훼손의 내용을 올리거나, 메신저, 메일 등 일대일 통신 채널을 통해서 내용을 전파하거나, 타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사이버 폭력을 막는 데는 인터넷 실명제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설사 인터넷 실명제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3개의 웹사이트에서 가입 시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고, 3개의 웹사이트에 덧글 입력 시 로그인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인터넷 상의 사이버 폭력이나 명예 훼손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고 그래서 효과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스스로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까? 대상과 효과가 너무나도 '제한적'인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아니라 실제로 인터넷 상의 사이버폭력과 명예 훼손을 줄일 대책이 필요하다.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만 키우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
최근에 발생한 대형(?) 사이버 테러는 싸이월드 실명 게시판에서 테러 대상의 실명을 확인하여 개인정보를 추적하고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테러를 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불필요한 실명 확인과 실명 노출이 사생활 침해와 사이버 폭력을 부르는 것이다. 정부가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통해서 부분적인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면 그 여파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적용되는 웹사이트가 아니라 전체 인터넷 공간에 미친다. 언젠가는 '일일 방문자가 50만 명인 포털이나 30만 명인 미디어 사이트'로 성장하기를 꿈꾸는 벤처 드림을 가진 인터넷 기업이라면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자신이 제공하는 웹서비스 가입 시 실명 확인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민번호와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저장하는 웹사이트가 늘어날수록 개인 정보의 누출 가능성이 커진다.
누출된 개인 정보는 사생활 침해에 쉽게 활용될 수 있다. 카드가 연체된 경우에 갑자기 날아오기 시작하는 고리 대금 업체의 스팸 문자 메시지. 이게 바로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전체 인터넷 공간에 실명제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되며, 개인 정보의 누출을 통한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EBS의 주민번호 삭제 결정, 되돌려야 하나?
최근에는 결혼정보회사 웹사이트가 해킹되어 60만 건에 가까운 개인 정보를 비싼 가격에 되팔려고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정보에는 재산, 학력, 성격 등 아주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EBS의 회원 정보도 무척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아주 민감한 개인 정보에 해당한다. EBS가 회원 가입 시 주민번호 등록을 의무화하고, 그 정보가 누출되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대한민국 대부분의 고3 수험생의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실명이 포함된 개인정보! 학습지 업체라면 큰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돈이 되는 개인 정보일수록 누출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개인정보는 아예 저장하지 않는 EBS의 회원 가입 방식이 가장 안전한 개인 정보 보호 방법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도입된다면 EBS가 청소년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 스스로 내린 ‘사려 깊은’ 결정을 거꾸로 되돌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다면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에 위협이 되는 꼴이 될 것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
다국적 기업의 웹서비스인 야후 코리아와 MSN 코리아 웹사이트도 EBS처럼 실명확인을 하지 않고 서비스 사용이 가능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통합 로그인 서비스인 패스포트에는 아예 실명 확인 자체가 없다. 야후 글로벌 사이트 중 야후 코리아만 가입 시 실명확인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외국 야후 웹사이트에 실명확인 없이 가입한 후에 야후 코리아 웹사이트로 로그인 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실명확인 없이 야후 코리아 웹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야후 코리아나 MSN 코리아 웹서비스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한국인이 미국 야후 웹사이트에 가입한 후에 야후 코리아 웹사이트에 로그인하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야후 코리아 웹사이트에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정확하게 적용하려면 야후 코리아는 전세계 글로벌 로그인을 포기하거나, 외국에서 가입하고 한국에서 로그인하는 사용자는 한국인으로서 실명 확인하거나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임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외국 야후 사이트에 가입 후 실명 확인 없이 한국 사이트에 로그인할 수 있도록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국내기업 입장에서는 차별이 될 수 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도입되면 야후, MSN과 같은 글로벌 로그인 정책을 취하는 웹서비스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야후, MSN과 같은 글로벌 로그인 서비스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회원 가입 시에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 식별 번호를 입력하고 실명 확인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정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에는 PC 통신 실명제를, 2003년에는 공공기관 게시판 실명제, 그리고 현재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인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정부가 전 세계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되는 인터넷 실명제를 지속적으로 도입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올바른 대책이 필요하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대상 웹사이트 중에서 회원 가입 시 실명확인을 하지 않는 웹사이트는 3곳뿐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웹사이트는 적용 대상도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명예훼손이나 사생할 침해 문제는 실명확인을 거쳐서 가입한 대형 포털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제한적 본인 확인제’의 효과도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오히려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불필요한 개인정보의 누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만 키운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시행되면 청소년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 주민번호를 삭제하고 가입 시 실명확인을 받지 않는 EBS의 '사려 깊은' 결정을 거꾸로 되돌려야 한다. 야후나 MSN의 글로벌 로그인 서비스는 한국을 제외하거나 한국인이거나 외국인을 증명하는 별도의 인증 과정을 추가해야 한다. 이렇게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정부가 자주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위배된다.

인터넷상의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아무런 효과도 없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와 같은 실명제의 도입을 끊임없이 시도하기보다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온라인을 통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는 피해 정도가 더 크므로 가해자의 민형사상 책임을 크게 하며, 피해자의 법률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는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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