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뜨거운감자
신원확인 유전자 DB, 획기적 감시시스템의 도입?

김병수 / 참여연대 정보인권팀 실행위원   bsook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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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감식 결과

최근 국무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바로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신원확인 유전자 DB 구축을 위한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로써 수사기관의 오랜 숙원이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물론 논의 초기부터 인권 사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반대해왔지만, 수사기관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 동안 공청회나 언론을 통한 토론회가 수차례 개최되었지만 논의 수준은 여전히 ‘인권침해’ 대 ‘과학수사’ 와 같은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얼핏 들으면 ‘유전자’를 이용한 ‘과학수사’로 날로 증가하는 흉악범을 ‘효과적’으로 잡겠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수사나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신비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법률안의 내용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보면, 이 시스템을 단순한 범죄해결의 도구로만 치부하기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란?
우선 유전자 감식, 유전자 DB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질병검사와 구별해서 개인 식별에 이용되는 유전자 분석 방법을 ‘유전자 감식(DNA typing)’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특정 개인의 전체 유전자에서 상대적으로 희귀한 위치들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유전자 감식을 통해 나온, 사람마다 특정한 패턴을 DNA 프로필(profile)이라고 한다. CSI 과학수사대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DNA는 타액, 혈액, 정액, 뼈, 머리카락, 피부조직 등에서 추출할 수 있다. 예컨대 범죄 현장에 남아 있는 담배꽁초, 머리카락, 정액 등에서 DNA를 추출 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범인이 사용했던 장갑, 흉기, 유리창에 찍힌 지문 등에서도 뽑아 낼 수 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유전자 감식은 친자 확인, 범인 검거, 사체 확인과 같은 신원확인 분야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유전자 감식 결과 나온 DNA 프로필을 저장해 검색 가능하도록 만든 것을 신원확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NA database)라고 한다.

전 국민 유전자 DB로 확장될 가능성 높다
유전자 DB의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점은 확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데 있다. 유전자 감식의 개별적 활용과 달리 유전자 DB는 일단 구축되고 나면 입력 대상, 활용범위 등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 근거가 있지만 DB의 속성상 입력 대상의 확대와 DB의 효율성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DB에 저장되어 있는 대상이 많아야 효율적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며 실제로 검경의 관련자들도 이런 특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현재 법률안에는 살인에서부터 강도, 폭력, 군형법에 이르기까지 12가지 죄목을 입력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시스템이 도입되고 대표적 사례가 나오면 그 대상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의 상황을 보더라도 처음에는 ‘사회적 정당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강간, 아동 성범죄 같은 흉악범에서 나중엔 사소한 절도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뉴욕 주의 경우에 시작단계에서는 입력 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시행 몇 년 후에는 비폭력 범죄를 포함해 107개로 대폭 확대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신원확인 유전자 DB를 구축했고 지금도 가장 많은 개인 유전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영국 경찰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DB 구축을 제안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확장의 속도나 수집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인데, 2004년 4월 이후부터는 체포된 모든 용의자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DNA를 채취할 수 있고,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유전정보와 DNA를 식별 가능하도록 영구히 보관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집회에 참석한 어린이의 유전자를 법률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채취해 그 아이가 죽을 때까지 보관할 수 있다. 현재 저장된 프로필은 270만 건(전체 인구의 5.2%) 정도인데 이런 속도로 간다면 조만간 500만 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민등록 DB나 지문 DB와도 연동되지 않을까?
입력 대상뿐만 아니라 다른 DB와의 연동이나 원래 수집목적 이외의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안)에서는 기본적으로 검찰과 경찰, 법원, 군법원 등이 유전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변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서도 이 DB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는 범죄자 유전자 DB가 장기적으로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90년대 말부터 검경은 서로 이 DB를 갖기 위해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결국 검찰은 수형자, 경찰은 피의자 및 피해자를 대상으로 각각의 DB를 구축해 상호 검색하도록 합의를 본 것이 이번 법률안의 특징인데, 스스로 DB의 특징을 잘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미 구축된 미아찾기 및 치매 노인 유전자 DB, 군대 DB 그리고 한때 논의된 바 있었던 이산가족 DB가 상호 검색되거나 연동되고,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이미 구축한 주민등록 DB나 지문 DB와도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경향은 국내외에서 확인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 법의학자들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수차례 한 사례가 있으며, 최근 영국의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범죄자 DB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의료연구 목적으로 설립한 UK Biobank, NHS 기록 등을 비롯한 의료 DB와 새로 구축될 ID 카드에 접근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유전자 DB, 일부 흉악범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니다
유전자 DB가 설립되면 유전자 감식의 개별적 활용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런 과정들이 범죄자와 같은 특정 집단에 한정된 사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분석이나 입력 대상이 된다. 형이 확정돼 강제적으로 저장되는 범죄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현장에서 발견된 다양한 샘플, 용의자나 가족, 현장 주변 인물 등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범죄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높다. 수사과정에서의 유전자 채취는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용의자 가족의 DNA 프로필을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DNA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으며, 자식이 DNA 제출을 거부 했을 때 부모가 DNA를 제출하는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범죄자 색출을 목적으로 수천 명의 지역 주민의 DNA를 수사 기관이 수집한 바 있다. 유전자 DB의 도입이 일부 흉악범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유전자 감식 정보는 질병정보처럼 민감하지 않고, DB에도 개인 식별 유전정보만 저장되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유전정보의 개념을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논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DNA 프로필에 질병 정보가 들어 있지 않더라도 개인이나 그 가족을 식별할 수 있는 개인식별 유전정보는 그 자체로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매우 민감한 정보 중의 하나이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분석 과정이나 분석 후 남은 잔여 DNA에서 다양한 유전정보를 추출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원확인 목적으로 미아의 유전자를 분석했을 때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유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사건이 종료 될 때까지 국가가 보관하게 되는 범죄현장 및 피해자의 DNA가 연구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에서는 신원확인 목적으로 추출한 DNA를 이용해 AIDS 검사를 진행해 물의를 일으킨바 있으며, 이미 2000년부터 국가 DNA DB를 이용한 19건의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24개 주가 범죄자 DB를 이용해 의료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DB 구축 주체가 수사기관이고, DNA 보관의 특성으로 인해 외부에서의 감독 또한 쉽지 않다.

유전자 DB는 국가 감시 체계의 확장
더욱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보자. DB가 구축되면 범죄자와 용의자에 대한 강제적 DNA 채취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연 이런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통계적으로 재범률이 높다고 해서 이미 죄 값을 치른 범죄자들의 DNA를 일괄적으로 국가가 강제로 채취해 그 정보를 죽을 때 까지 보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기 ‘신체일부’를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이런 행위를 개인 프라이버시의 심각한 훼손으로 보는 학자들도 상당수 있다. 이 문제는 DB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조차 여전히 논쟁중이다. 또한 이런 행위는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아닌 개인적(유전적) 차이로 파악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런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국가의 DNA 채취에 맞서 ‘샘플 반환 소송’이나 ‘양심적 DNA 거부자(DNA conscientious objectors)’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약 DB가 구축되면 전과자들은 죽을 때까지 우범 지역을 지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건만 발생하면 수시로 검색될 것이며 지나가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뜨렸다면 용의자로 지목돼 여러 가지 번거로운 과정들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원확인 유전자 DB를 설립한 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각 개인마다 고유한 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와 전 국민의 지문을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비정상적 신원확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특수한 식별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유전정보까지 국가가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신원확인을 위해 개별적 상황에서 유전정보를 이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효율성을 이유로 DB를 구축해 활용하게 되면 차원이 다른 복잡한 쟁점들이 제기된다. 특히 유전자 DB를 흉악범과 같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사회적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유전자 DB는 단순한 범죄 해결의 도구가 아닌 새로운 신원확인 시스템의 도입, 국가의 감시 체계 확장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시급히 필요한 법률은 강제적 DB 구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수사과정에서 개별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유전자 감식 기술에 대한 규제에 관한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수사기관들은 아무런 법률적 기반 없이 유전정보를 수집・활용・보관해 왔다. 이를 규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범죄자, 용의자들에게 기술적 조력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유전자 DB 도입 여부는 외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국내 범죄수사체계, 기존의 신원확인 시스템의 관계, 개인정보 이용 관행이나 보호 시스템, 관련 기관들의 사회적 신뢰 등과 같은 폭넓은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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