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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회의 중의 하나인 ‘16차 국제에이즈회의’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8월 13일~18일에 걸쳐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에이즈와 관련된 주요 이슈가 모이는 자리이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있는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관료, 국제기구 관계자, 의약 관계자, 연구자와 세계의 PLHA(People living with HIV/AIIDS, 에이즈 환자와 HIV 감염인)가 모이는 자리이다. 이번 국제 에이즈 회의의 주제는 “Time to deliver”였다. 이제껏 진행된 국제 에이즈 회의와 연구자와 정책가에 의해 제안되었던 많은 방법들을 탁상 공론할 것이 아니라 “이제 결정하고 실천을 해야 될 때” 라는 것이다.
이번 16차 에이즈 회의에는 특별히 한국 HIV/AIDS 감염인과 에이즈 활동가들이 에이즈 문제 해결에 있어서 소외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한국 사회에서 PLHA의 삶을 위협하는 사안들에 대해 연대 투쟁하고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국제에이즈회의 준비회의를 진행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이슈 중에서 한국의 반인권적인 PLHA 관리정책의 제도적 실체인 “후천성 면역 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 예방법)”과 에이즈 치료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한미FTA를 주요한 의제로 삼고, 여러 활동 방법과 투쟁을 준비하였다.
캐나다 토론토. 준비하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졌던 고민은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그것도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세계적으로 에이즈 감염인 수가 가장 적은 축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었으며, 많은 질문도 받았고, 각 나라의 감염인과 활동가들에게 지지와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에이즈 예방법, 누구를 위한 발상(?)
인권과 관련된 세션과 예방 관련된 세션을 돌면서 한국의 에이즈 예방법으로는 에이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였다. 시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craze’ 아니면 ‘terrible’이란 단어이다. 맞는 말이다. 미치지 않고는 이러한 법을 에이즈 예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도 한국의 에이즈 예방법과 예방 정책으로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정책과 법으로 인하여 예방이 잘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될 것처럼 국제 사회에 홍보하고 있다.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HIV/AIDS 감염인을 에이즈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보고 있는 법, HIV/AIDS 감염인의 인권과 에이즈 예방은 반비례한다고 생각하는 법,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하는 법, 콘돔이면 무조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정책이 에이즈 예방에 있어서 효과적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HIV/AIDS 감염인을 감시하고, 특정한 집단을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정책을 이제는 중단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전 세계의 HIV/AIDS 감염인과 활동가들의 지지와 연대를 요청하였다.
FTA,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한국의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태국의 활동가와 인도, 말레이시아 활동가 안에서도 FTA는 주요한 투쟁 주제가 되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협상중인 나라의 HIV/AIDS 감염인과 활동가 어느 누구도 FTA를 찬성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작은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회의장 및 시위 곳곳에서 퍼포먼스를 하였다. FTA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흰색 옷을 입은 HIV/AIDS 감염인을 밧줄로 노예처럼 질질 끌고 가는 형태의 작은 퍼포먼스와, NO FTA 스티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한 권력해방을 위한 에이즈연대 ACT UP, 지구적 의료접근 프로젝트 Health GAP, 제3세계네트워크 Third World Network, 태국HIV/AIDS 감염인네트워크 TNP+, 한국HIV/AIDS공동행동 Korea HIV/AIDS Wide Action 등의 단체는 ‘자유무역협정과 지적재산권이 의약품 접근권을 파괴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행사장 전체를 돌면서 “이윤보다 생명이다”, “FTA는 민중을 죽인다.”를 외쳤다. 각 나라의 언론사와 방송사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FTA로 인하여 HIV/AIDS 감염인의 의약품 접근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민중의 의약품 접근이 어려워져서 생명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초국적 제약자본과 결탁한 미국 정부, 지적재산권 강화를 통하여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만을 극대화시키는 FTA협정을 세계의 많은 HIV/AIDS 감염인에게 알리고, FTA를 협상중인 나라의 활동가들과 지속적인 교류와 연대를 통하여 저지할 것이다.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초국적 제약자본이 HIV/AIDS 감염인의 생명을 담보로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제약회사를 향한 감염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약은 환자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에도, 제약회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윤에 맞지 않으면, 약을 판매하지 않거나 개발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버젓이 국제에이즈회의장 내 가장 번듯한 자리에 대형 부스를 설치하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번에도 화이자,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 로슈 등의 회사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 많은 부스 중에서 애보트의 부스는 없었다. 에보트는 에이즈 치료제 중 칼레트라를 만드는 회사이다. 칼레트라는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수 없는 치료제이다. 또한 노비르라는 치료제를 개발하였지만, 가격을 올려 시장에서 강제 퇴거시켜 버렸다. 환자가 먹을 수 없는 약은 약이 아니다.
애보트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제약회사 부스가 있는 홀에는 매일 시위가 끊이지를 않았다. 특히 활동가들은 '애보트, 너의 약속처럼 너의 부스가 텅 비어있다(Abbott booth is empty just like your promise)라는 대형 현수막과 선전물로 애보트 부스를 만들어서 애보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초국적 제약회사는 전 세계의 HIV/AIDS감염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약이 없어서 죽어야만 하는 전 세계의 감염인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약은 환자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거대 제약사의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국제사회, 각 나라의 정부와 제약회사는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제는 결정하고 실천을 해야 할 때
2006 국제 에이즈 회의의 주제처럼 ‘이제는 결정하고 실천을 해야 할 때’이다. 각 나라의 정부와 연구가, 정책가, 제약회사는 에이즈 문제 해결과 HIV/AIDS 감염인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고, 실천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무엇이 에이즈 예방에 중요한 것인지,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보장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치료제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는 감염인의 관점으로 결정되고 실천해야 한다. 에이즈 예방법, 고위험군 논리와 같은 한국 정부의 에이즈 정책의 전환과 감염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실천, 초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포기와 치료제 공급, 전 세계적 에이즈 예방을 위한 새로운 예방 패러다임 건설 등,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여 결정하고 실천해야 될 때인 것이다.
2006년 국제 에이즈 회의 참가로 인하여, 한국의 HIV/AIDS 감염인과 활동가들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전 세계의 활동가들의 활동을 배울 수 있었으며, 에이즈 문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한국의 에이즈 문제를 세계의 활동가들과 공유하고 연대함으로써 지지를 얻었고, 지역적인 문제를 넘어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번 회의를 통하여 배운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여, 에이즈 문제가 왜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사회적 문제인지 같이 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