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Cyber
DRM 호환성 해법, 한국과 프랑스

양희진 /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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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컴퓨터가 운영하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인 아이튠즈(iTunes)에서 판매된 음악은 4억 곡이 넘는다. 온라인 음악시장의 당당한 1위이다. 애플컴퓨터의 하드디스크형 엠피3(아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도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이튠즈와 아이팟의 성공은 ‘따로 또 같이’ 이루어낸 애플컴퓨터사의 작품이다. 아이튠즈에서 판매한 음악파일은 MP3 플레이어로서는 아이팟에서만 플레이되고, 아이팟에서는 다른 음악파일 판매업자가 판매한 음악파일이 작동되지 않는다.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연결하는 끈은 음악파일에 걸려있는 페어플레이(FairPlay)라는 디지털권리관리(Digital Right Management, 아래 DRM) 기술이다. DRM이란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자물쇠 기술이다. 이렇게 DRM이 걸린 음악파일은 DRM을 푸는 키(key)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플레이될 수 있다. 아이팟 외의 다른 MP3 플레이어에는 페어플레이를 풀 수 있는 키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결합시켜 소비자를 자사의 시장 안에 가둬두려는 애플의 폐쇄 전략 때문이다.

음악 DRM 기술, 공정한 경쟁 저해
다른 MP3 업자가 임의로 페어플레이를 풀 수 있는 장치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장착하면 어떨까? 이건 불법이다. 세계 대부분의 저작권법은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DRM과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저작권자 허락 없이 우회하는 것을 금지하고, 형사처벌까지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이미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아이튠즈의 고객을 아이팟으로 연결하고, 아이팟의 고객을 아이튠즈의 고객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이와 같은 ‘소비자 봉쇄’ 전략은 소비자에겐 선택권의 박탈을 의미한다. 아이튠즈에서 다운받은 음악파일이 많으면, MP3 플레이어는 의당 아이팟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MP3 플레이어 판매업자는 불공정경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맥스MP3가 SK텔레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행위 심의를 신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텔레콤은 멜론(Melon)에서 다운받은 음악파일만이 핸드폰에서 플레이되도록 하고 있고, 벅스 등 다른 음악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음악파일은 재생되지 않는다. 그동안 음악파일 판매업체들은 “이통사의 DRM 시스템 때문에 음악사이트에서 구매한 음악을 MP3폰에 옮겨 들을 수 없다”며 “SK텔레콤 멜론, KTF 도시락 등 이통사 음악서비스를 통해야만 MP3폰에 음악을 넣을 수 있어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SK텔레콤은 DRM은 지적재산권 문제이므로 호환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본격 조사에 착수하자, SK텔레콤은 지난 8월 10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DRM 연동기술 규격인 EXIM을 활용, 10월말까지 자사의 DRM과 다른 DRM간 호환 기술 개발을 완료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멜론이 아닌 다른 DRM을 적용한 음악파일도 SK텔레콤 핸드폰에서 재생이 가능해 진다.

프랑스 의회, DRM 상호호환성 문제 논란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나 국회는 이 부분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다. 오히려 한미FTA가 체결되는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정보사회 저작권법(DADVSI)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DRM의 상호호환성 문제가 의회 내에서 크게 부각되었다. 유럽연합 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이번 법 제정에서 프랑스는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통제하기 위해서 권리자가 채택한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행위나 우회 수단을 제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개정안이 나왔을 때 우회금지 조항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의회 내외부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첫째, 우회금지 조항에 의하면 DRM을 사용하는 음악, 비디오, 문서 파일을 읽을 수 있는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는 모두 위법한 것으로 된다는 점이다. 자유 소프트웨어 주창자들은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둘째, 저작권이나 특허권이 아닌 새로운 지적재산권을 DRM 개발자에게 창설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이 조항에 의하면 DRM의 우회를 용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DRM 개발업자들 상호간에 다른 경쟁자들을 형사 고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법의 목적과 맞지 않다. DRM 우회행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저작권자나 실연자, 음반제작자, 영화제작자 등의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DRM 회사에게 새로운 법적 보호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DRM 제작회사와 저작물 콘텐츠 저작권자가 상이한 경우에 특히 문제될 수 있다. 셋째, 이 조항은 음악파일 판매업자에게 소비자를 종속시킨다는 점이다. 음악파일 판매업자의 DRM 시스템은 이 판매업자가 판매하거나 라이선스를 받은 플레이어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이팟과 아이튠즈와의 관계처럼. 넷째, DRM을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에 관한 기술 문헌이나 소스코드의 공표가 금지된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문제된 바 있다. 특정 DRM의 취약성이나 보안상 문제점에 관한 연구 목적의 학술논문 조차 이의 출판이 해당 DRM 사업자나 콘텐츠 사업자들로부터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수단의 제공이라는 이유로 위협을 받아야 했다.

DRM, 자유 소프트웨어에 대한 위협이 될 것
프랑스에서 PC 소프트웨어 산업은 MS나 애플컴퓨터와 같은 소수 기업이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들 회사는 모두 DRM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금지 조항이 신설될 경우, 이들 회사의 우월적 지위가 강화되고 자유 소프트웨어와의 경쟁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졌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프랑스 의원들은 자유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유럽 밖의 외국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분야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는 경쟁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P2P에서의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모두 형사 처벌하는 규정까지 포함하고 있었는데, 좌파정당들은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포괄적 허가규정’을 포함시키려고 했다. 일정한 인터넷 이용요금을 지불하면, 마음대로 P2P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었다. 그러나 이 안은 폐기되었다. 다만, 여러 우익 정당, 중도우파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은 비판을 일부 수용하여 DRM 시스템의 호환성을 보장하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DRM 시스템 제공자는 호환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 문서를 이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DRM을 실행하는 시스템의 기술 문서와 소스코드의 공표는 금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수정안에 따르면, 애플은 페어플레이의 호환성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애플컴퓨터는 DADVSI법의 통과는 불법복제를 부추길 것이며, 이는 국가가 해적질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격앙된 비판을 늘어놓았다. 미국 상무부 장관까지 애플컴퓨터를 지원 사격했다. 어쨌거나 프랑스 하원에서는 좌파정당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다수를 점하는 우익정당들이 찬성했기 때문에 그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상원으로 보내졌고, 상원은 일부 수정하여 가결하였다.
상하원에서 채택된 개정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자, 상하원의 합동위원회를 열어 수정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좌파정당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양원 합동위원회 논의를 거부했다. 상하원의 개정안의 차이가 크다면, 하원에서 상원의 개정 내용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주장이었다. 결국 상원의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좌파정당 소속 의원들은 입법 절차의 문제와 함께, 어떤 행위가 저작권 침해인지 알 수 없어 형사처벌 법규의 명확성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지난 7월 6일 헌법위원회에 DADVSI법의 위헌심사를 청구했다.
헌법위원회는 8일만에 위와 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상호호환성‘을 위해서는 DRM 우회가 허용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이 말의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는 등 형사처벌 규정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점을 이유로 이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법위원회가 DRM 기술정보의 공개 의무화 자체를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의회의 개정안은 일부 수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의 이번 입법 과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었던 이유는 프랑스가 유럽연합 지침 및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제약 속에 프랑스 국민이 널리 문화와 정보를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좌파정당들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우리 저작권법의 일부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며, 이용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있는 만큼 프랑스 입법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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