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북마크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침묵과 열광」(강양구 김병수 한재각 공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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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한국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 하여 “황우석 사태”이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최첨단 생명공학적 지식을 온 국민의 필수교양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이 사건은 안타깝게도 발생 후 몇 개월이 지난 현재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2006년 6월 한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침묵과 열광」으로 황우석 사태의 원인과 배경, 그 전개과정을 상세히 기술했으며, 오랫동안 과학기술운동에 참여한 3인이 공동저술의 형태로 작업함으로써 과학기술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이른바 ‘황우석 사태’의 기원을 7년 전으로 거슬러 잡고 있기는 하지만) 황우석 사태는 MBC PD수첩의 의혹보도 이후 매우 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다. PD수첩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성난 네티즌의 압력으로 MBC 설립 이후 초유의 무광고 방송이 이루어졌으며, 이어 YTN의 “PD수첩 제작진 취재윤리 위반의혹” 보도에 의해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가, “황우석 의혹 2탄”으로 방송 재개,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폭로 기자회견, 서울대 자체 조사위의 발표, 황우석의 동료연구원에 대한 검찰고발 등 국정홍보처의 홍보문구대로 “Dynamic Korea”를 방불케 하는 일련의 과정이 연출됐다.

저자들은 황우석 사태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과학기술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보듯이 문제는 비단 부도덕한 황우석 1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이오벤처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며 생명윤리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40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황우석에게 몰아준 정부관료와 정치인들, 제대로 된 사실관계의 검증을 포기한 채 황우석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애국주의를 유포하며 특종기사 만들기에 급급했던 주류 언론인들, 장밋빛 청사진 속의 엄청난 돈에 눈이 먼 경제계 인사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자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침묵했던 과학자들 모두의 합작품이 황우석 사태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회피하여 황우석 의혹에 침묵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자신들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저자들은 한국사회가 경제성장이라는 담론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도 이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성장주의 경제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기술분야에 있어서는 박정희 식의 결과지상주의의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다는 얘기이다. 즉, 한국인에게 있어 과학기술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시켜줄 좋은 수단이고 항상 옳은 것이며,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는 대상일 뿐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과학기술관이 과잉된 애국주의적 감성과 결합하여 대중들의 열광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황우석 연구실에 난자제공 동의서를 전달하며 깔렸던 붉은 진달래꽃과 황우석지지 집회의 그 수많은 촛불들은, 견제 받지 않는 과학기술과 애국주의가 만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 (난 아직도 그 붉은 진달래꽃만 생각하면 섬뜩하다.) 황우석의 신화에 경도되었던 한국인들은 그들의 우상에 어떠한 이성적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고, 합리적인 비판자들을 매국노로 간주하여 철저히 배제시켜 버렸다.

저자들은 일본 사상가 토다 키요시(戶田淸)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교양은 역사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과학기술이 점점 더 우리의 생활을 좌우하고 있는 이때, 이 말은 다시금 천천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며, 이는 비단 생명공학 뿐 아니라 NEIS 강행, CCTV설치, 전자주민증 도입추진 등에서 드러난 우리 정보인권의 후진성 극복을 위해서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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