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사이방가르드
사그러들지 않는 한 혁명가의 아이콘, '유비쿼터스' 체 게바라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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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옥스퍼드에 갈 일이 있어 그 곳을 경유해 런던을 방문했다. 런던에 가자마자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이란 곳을 찾았다. 7, 8월 두 달여 동안 체 게바라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10평 남짓한 곳에 마련된 체의 전시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했다. 이곳에서 혁명가의 이미지를 새겨놓은 다양한 아이콘들을 볼 수 있었다. 체의 이미지가 새겨진 쿠바산 시가, 포스터, 티셔츠, 사진, 버튼, 인형, 문신, 가방, 벽화, 화폐, 맥주, 시계 등이 다채롭게 전시돼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60년대 활동했던 한 혁명가의 이미지가 이토록 전 세계 대중의 뇌리와 각종 상품과 신체에 깊게 각인된 적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혁명가 체의 대중적 이미지는 국적을 뛰어넘고, 동성애자와 원주민 등 소수자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예수의 희생과 존 레논의 평화주의에 비교되고, 선동 예술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고, 길거리 패션의 약호로 쓰여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전공하고, 과테말라에서 저항을 조직하다 탈출해 55년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운명적으로 만나고, 59년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홀연히 모든 관직을 훌훌 털고나와 우루과이, 브라질,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등지로 떠돌며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조직하고, 결국 볼리비아에서 군부에 맞서다 미 CIA의 정보력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2천여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쫓기다 부상을 입고 잡혀, 허름한 학교건물 안에서 4발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39살의 나이로 마감했으니, 한창때에 갔다.

체의 베레모, 강인한 눈빛의 응시, 굵은 얼굴선, 가죽 외투, 그리고 흐트러진 수염 등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자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2000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힌 데는 그 자신이 벌인 끊임없는 권력에 대한 자기부정과 평생을 업으로 삼았던 게릴라 투쟁 말고도, 이상하리만치 전 세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그가 지닌 특유의 이미지가 한몫했다. 실지 체의 아이콘이 모두에게 각인된 데는 60년 3월 <체, 게릴라 영웅>(Che, Guerillero Heroico)이란 제목으로 찍은 알베르또 디아즈 구띠에레즈(그의 사진 작업실 이름을 따서 흔히 알베르또를 '코다'로 부른다)의 사진 작품이 계기가 된다. 코다(Korda)는 피델의 전속 사진사였으나, 그가 찍은 체 사진들이 오히려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체를 대중문화와 예술계의 중요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2001년 그가 파리에서 죽기까지 코다는 사진집과 전시회를 통해 쿠바혁명과 체 특유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렸던 인물로 기록된다. 실지 우리가 보는 그의 친근한 이미지들은 코다가 만들어낸 사진의 변형물들이다.

어쨌거나 혁명의 세월이 흘러 이제 체가 그토록 싸웠던 자본주의의 물신화된 가치 행태에 그 스스로가 상품 아이콘이 되어 팔리는 현실이 됐다. 젊은이들은 체 가방을 매고, 길거리 야시장에서 체 셔츠를 사 입고, 체 문신을 팔뚝에 새기고, 체 '빤쓰'를 입고, 체 맥주를 마신다. 일부 그의 아이콘이 자본주의 상품화의 경계를 넘나든다고는 하나, 멕시코 농민군들의 라깡도나 정글에 새겨진 빛바랜 그의 벽화와 빈민들의 삶터에 그려진 체의 모습, 소수 저항의 패러디로 그려진 게이 모습의 체, 예수의 얼굴로 핍박받는 체, 경건해야할 수녀의 젖가슴 위로 새겨진 체, 미국 달러 위에 그려진 체, 그리고, 복제되고 새롭게 창작되어 인터넷을 통해 흐르는 수많은 체의 디지털 이미지들은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체는 죽어서도 이렇듯 현대 자본주의의 야만에 들러붙어 게릴라전을 펼친다. 마치 시스템에 경련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처럼, 물신화된 상품들에 들러붙고 옷과 몸에 새겨져 거리 곳곳을 메운다. 이는 단순히 과거 혁명 시절에 대한 향수와는 다르다. 현대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잠재된 분노 수위를 따지려면 얼마나 많은 체의 아이콘들이 사방에서 목격되는가를 봐야 한다. 이는 정비례한다. 그들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단번에 터뜨릴 수 없는 답답한 분노의 출구로 체의 아이콘이 종종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잠재하는 분노의 게릴라전이 승리하는 날이면, 아마도 체 아이콘의 '유비쿼터스'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런던에서의 이번 체 전시회 방문은 필자에게 만감을 안겨주었다. 체는 죽어서 진정 살아있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관련 주요 전시회 페이지들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 체 게바라 전시회 http://www.vam.ac.uk/che
캘리포니아 사진 박물관 체 게바라 전시회 http://138.23.124.165/exhibition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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