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영화
체이싱 아미
1997/케빈 스미스

시와 / 영상미디어 활동가   fjt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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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소리 높여 단언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옆에 있을지라도, 엄연히 각기 다른 경험을 겪어오며 갖가지 빛깔의 욕망을 품은 사람들이 헤어질만한 이유는 참 많다. 지긋지긋한 기억으로 남겨진 개인사의 한 토막을 연상시키는 그 무엇을 대면하거나, 체화된 기준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상대방으로부터 발견한 경우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체이싱아미, Chasing Amy>는 어떤 여성과 남성의 순탄치 않은 만남에서부터 이별, 이별 뒤 숨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미국 저예산 독립영화를 제작해왔던 케빈 스미스의 작품이다.

‘띨띨이와 중독자’라는 만화를 연재하며 죽마고우로 지내던 두 남성, 홀든과 벤키 앞에 어느 날 한 여성이 등장한다. 역시 만화가인 알리사의 매력에 홀든은 급격히 빠져들고 벤키는 그런 친구를 향해 뜻 모를 비아냥을 시작한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자리한 파티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눈빛을 뿜어대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알리사와 정열적으로 입을 맞춘 건 한 여성이었다. 홀든은 이내 풀이 죽어버리고,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인 벤키는 홀든을 비웃으며 짝을 이룬 두 여성의 모습을 희귀한 구경거리인 냥 신기해한다.

그런데 홀든에게 적당한 호감을 느낀 알리사가 그를 찾으면서,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레즈비언의 섹스에 대한 편견과 무지, 궁금증어린 질문들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대화에 시간이 갈수록 숨과 웃음이 덧붙여지며 그들은 친밀해진다. 한편 홀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벤키는, 알리사를 홀든과 벤키의 틈에 파고든 존재로 여기며 못마땅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사의 따뜻함과 개성어린 선물을 받게 된 홀든은 그녀를 향해 숨겨두었던 연정을 드러낸다. 당황한 알리사는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비속으로 달려 나가 소리쳐보지만, 알게 모르게 돌아선 홀든을 향한 발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옷을 벗은 채 작업실 소파에 누워있던 그들을 깨운 건 벤키였다. 심상치 않은 벤키의 질투와 집착은 과해지고, 알리사와 홀든의 더없이 가까운 듯 보이는 동침은 계속된다.

벤키는 홀든에게 ‘열린 지퍼’라 쓰여진 알리사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새겨진 사진을 내민다.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 온 것은 괜찮지만, 내심 알리사에게 첫 남성이고팠던, 알리사가 남성들과 ‘난잡한’ 성관계를 쌓아 온 이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홀든은 괴로워한다. 스스로 역시 되살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당당히 인정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알리사의 마음은 홀든의 엉뚱한 제안으로 다시 한번 뭉그러뜨려진다. 일년 후 강한 여운과 모호함이 교차하는 그들의 재회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레즈비언으로서 살아온 알리사가 홀든을 택한 과정과 호모포비아였던 벤키가 홀든을 향해 자리했던 내면을 깨우치는 모습은 대조적이면서도 한 개인을 고정적으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유연한 시선이 엿보여 인상적이다. 유쾌하고 재기 발랄한 에너지를 선사하는 알리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50%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여성과 사랑을 나누어 온 스스로를 담백하고 유연하게 드러내면서도, 현재 파고드는 감정의 속살에 충실하여 홀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솔직하고 정열적으로 속삭인다. 알리사의 존재로 인하여 단짝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추궁하고 괴롭히며 스스로 역시 괴로웠을 ‘호모포비아’ 벤키는 몸이 말하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이 용인한다.

케빈 스미스 감독의 ‘뉴저지연작’ 중 하나로서, 뉴저지의 특정한 지역을 공간적인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체이싱아미>는, 지역 내 여러 커뮤니티 문화가 만들어내는 친숙함 혹은 협소함이 영화 곳곳에 배어있으며, 이는 주인공들의 감성과 관계의 실타래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아미를 쫓아서 (chasing Amy)”는 홀든과 벤키의 만화 ‘띨띨이와 중독자’의 모델인 영화 속 인물의 대사 중에 등장한다. 붙잡아 되돌릴 수 없는, 이미 지나쳐버린 상대방의 고유한 시간에 사로잡혀, 현재 발하는 관계의 빛을 흐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하라는 안타까움이 반영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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