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장애없는
장애인 학습권 쟁취를 위한 방송통신대학에서의 투쟁

윤성태 / 한국방송통신대학 시각장애인 동호회 회장   balard@myfi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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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보혁명의 시대 한 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실제 피부로는 정보혁명으로 인한 보다 불평등한 사회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에 정보통신부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홈페이지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희망을 갖는다. 왜냐하면, 과거보다 행동하고 실천하고 외치는 장애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많은 장애인 동지들의 열정적인 투쟁을 보면서 변화의 느낌을 받는다.

나 역시 작년 8월 12일부터 약 10개월 간 혜화동에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정문에서 합법적인 집회를 해 본 경험이 있다. 목적은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시각장애인들이 정상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출판부에서 교과서를 컴퓨터 파일(텍스트 파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공급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교과서를 자체적으로 텍스트로 변환하여 컴퓨터로 학습을 해왔다. 종이 교과서를 구입하여 자원봉사자들에게 타이핑을 의뢰하고, 그 타이핑된 내용을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여 컴퓨터를 통해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공부를 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를 제작하는 데에만 2-3개월이 소요되었다. 결국 중간고사를 며칠 앞두고 교과서를 손에 넣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심지어는 중간고사를 마친 후에야 교과서를 손에 넣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따라서 정상적인 학습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약 4년 전부터 시각장애인 선배들이 대학측과 대화를 했으며, 그 후로 3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우리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음에 따라, 작년 8월 12일부터 집회를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상습적인 거짓말을 한 출판부의 팀장을 해고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여러 포털 사이트에 우리의 주장을 홍보도 하고, 교육인적자원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 진정을 하였으며, 오프라인에서 서명을 받는 등 다양한 홍보전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합법적인 집회를 하였으나 대학측이 총장 명의로 선 집회 신고를 하는 바람에 집회를 하지 못하고 설명회로 대체한 적도 많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총장 명의로 선 집회 신고를 하여 합법적인 집회를 차단하려는 대학측의 발상은 가장 어이없는 일로 기억된다.

결국 집회를 시작한지 10개월이 지나서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중재로 교육인적자원부의 특수교육 담당자, 문화관광부의 저작권과의 실무자, 방송통신대학의 출판부와 학생처의 담당자, 그리고 우리 시각장애인 동호회와의 간담회를 갖게 되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시각장애인 동호회와 대학측이 중재안을 마련하도록 조정을 함에 따라, 6월 14일에 방송대측과 우리 시각장애인 동호회가 간담회를 통하여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하기 편한 파일을 공급하되, 암호화를 하여 교과서를 공급한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그 후에도 많은 간담회를 통하여 올 2학기부터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디지털권리관리(DRM : 디지털권리관리 DRM이란 Digital Rights Management의 약자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위해 콘텐츠에 암호화 등 기술적 방법을 통해 허락없이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을 통제하는 기술을 의미한다.)를 적용한 PDF 파일을 공급하도록 합의하였고, 대학측이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10개월 간의 투쟁으로 얻어낸 교육권 확보인 듯 싶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아 온 출판부 팀장의 해고 역시 끝까지 관철시켜야할 문제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끝까지 해결하기 위하여 4학년임에도 논문을 제출하지 않았다. 방송대는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남은 문제까지 해결하고 졸업을 하려고 논문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방송대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문제를 표현하게 된 것은 장애인에게 있어 정보접근 문제이든, 교육권 확보 문제이든, 외치고 투쟁하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결국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당사자들의 투쟁에 의하여 제도가 바뀌었고, 인권이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열악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분신 자살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감옥행이 계속 되었으며, 여성해방을 부르짖었던 수많은 용감한 여성들에 의하여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었다. 장애인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6년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 동지들이 거리에 나와 투쟁을 하였는가? 1개월이 넘는 단식과 노숙농성 등 참으로 견디기 힘든 투쟁을 통하여 무상교육 확대실시 법제화, 학습도우미 지원, 자립생활 지원 명목으로 415억 원 확보 등은 장애인 동지들이 정부에게서 빼앗아온 큰 성과였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이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장애인 교육문제만 살펴보더라도 아동교육, 청소년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 등 다양하다. 당사자들이 존재하는 한, 여러 형태의 교육 모두가 중요한 문제이다. 아동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아동교육에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논리만 있다면, 다른 교육 역시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하며, 다양한 단체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즉 장애인 아동교육권 연대, 장애인 청소년 교육권연대, 장애인 고등교육권연대, 장애인 평생교육권연대 등 말이다. 이러한 터 위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는, 여러 단체가 상호 유기적인 협조를 하면 될 것이다. 특정 사회문제가 있을 때에 여러 수많은 단체들이 연대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체 하나가 수많은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이제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자신이 가장 아팠던 기억을 회상해 보시기 바란다. 단 몇 초간만이라도,,,
세상을 살면서 서러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이 가진 자들과 비교되는 순간에, 능력이 있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을 당할 때,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을 때, 얼마나 속이 쓰렸을 것인가! 이러한 아픈 기억을 한번쯤 떠올리고 서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픈 경험을 한 장애인이 다른 유형의 장애인을 이해하고, 성차별을 당했던 여성들이 그 아팠던 기억을 되살려 장애인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서민이어서 아팠던 분들이 그 기억을 되살려 장애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보다 빨리 서로를 같은 하늘아래에 사는 동지로 인식하는 좋은 사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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