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학교이야기
사라지지 않는 ‘동원’ 문화

김현식 / 포항 대동중학교 교사   yonorang@edu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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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단체가 ‘안전지킴이 학부모 연수’에 참가할 학부모 이십 여명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 왔다. 사회 민주화와 더불어 학교 사회도 예전과 몰라보게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학부모를 ‘동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행사에 교육청 후원을 얻고, 각급 학교 교장 모임을 통해 사전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 당연히 교장의 강력한 협조로 인해 교육 활동과 별로 관계가 없는데도 학급 담임들은 한 명의 학부모를 추천(?)하느라 애를 먹는다. 누가 평일 오후에 시간을 내고 싶을까? 이럴 땐 담임은 흔히 임원이라고 부르는 학급회장 어머니를 가장 만만하게 여긴다.

2. 내신 성적 반영 비중이 높아지고 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민원 제기로, 어느 때부턴가 정기 고사에 ‘학부모 감독’ 제도를 운영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고사 시간에 교사 혼자 감독하면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막기 어렵다고 보고 보조 감독으로 학부모를 모시는 것이다. 사흘 정도 걸리는 정기 고사 시간에 학부모 보조 감독을 충당하려면 한 학급에 적어도 예닐곱 명의 희망자를 찾아내야 한다. 담임 입장에서는 학부모 감독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가 된다.

3. 우리 지역에서 모처럼 전국적 문화예술 행사가 열렸다. 집행위원회 명의로 ‘문화예술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참여시켜 달라는 공문이 전달되었다. 그것도 한 학년 전체 학생 숫자까지 명시에서 동원해 달라는 것이다. 각 반별로 할당량이 정해진다. 문화예술 체험은 뒷전이고 할당량을 채우기에 허덕인다.

이번 가을에 벌어지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동원하는 사례다. 예전에 어느 선거에서 내건 구호로 ‘동원에서 참여로’라는 게 있었다. ‘동원’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나 물건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동원되는 대상은 주체가 아니라 물건과 마찬가지로 객체일 뿐이다. 군사 정권은 군인처럼 학생들을 마음대로 쉽게 동원시켰다. 전국체전에도 동원하고 각종 행사나 일이 있을 때마다 교사와 학생을 종 부리듯 하였다. 이제 사라질 법도 한데 동원에 의존하는 습관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담임이 부르니까, 자식을 볼모로 잡힌 학부모(대부분 직장을 가지지 않은 어머니)는 마지못해 ‘연수’에 참가하여 억지로 강의를 주입 받는다. 질문을 하거나 내 의견을 생각하거나 말할 틈도 없이 그냥 짜놓은 각본에 박수치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할 뿐이다. 보조 시험 감독으로 불려 온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감독교사가 학부모 감독 눈치 때문에 학생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실제 효과는 거의 없는 형식적인 학부모 감독일 뿐이다. 억지로 문화예술 체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공연이나 행사의 취지나 내용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친구들과 떠들거나 공연장을 막 뛰어다닌다. 공연 중간에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원을 요청한 측에 물어보았다. 왜, 당신들은 학교에 동원을 요청하는가? 좋은 행사이기에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참여하면 좋지 않은가? 그냥 오라고 해도 오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더디더라도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자. 그게 순리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더 이상 동원 대상이 아니다. 제발 학생들과 학부모를 그만 괴롭히기 바란다. 이제 “동원의 유혹에서 제발 벗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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