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과학에세이

이성우 / 공공연맹 사무처장   kamb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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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학생당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게 되었다. “이북의 핵개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다(52.63%). 2. 반전반핵의 견지에서 볼 때 옳지 않은 조치이다(41.05%). 3. 평화적 이용목적의 핵개발은 괜찮지만 군사적 핵개발은 옳지 않다(4.21%). 4. 기타(2.11%). 핵문제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하나로 뭉뚱그려 질문한 것도 억지스럽고, 예시한 답변 항목들을 보니 마치 편가름을 하려는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각급 회의에서의 논쟁도 학생당원들의 인식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당혹스러움을 넘어 화가 치민다. 어떠한 이유의 핵무기 개발에도 명확히 반대하고 이른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하는 핵 발전까지 반대하는 것은 당의 강령을 떠나서 진보정당의 확고부동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시때때로 당 간부들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이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하는 이념이자 가치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최근 논란은 당의 정체성에 커다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한편,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은 따로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 핵에너지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과는 달리, 에너지 자원을 새롭게 개발한 결과가 아니라 원자폭탄 개발이라는 군사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파생물이다. 핵에너지에 관한 연구는 공통의 핵물리학적 기초, 공통의 과학기술적 연구, 공통의 경제적 예산과 관리에 기반하고 있다. 2차 대전 후에 핵개발을 주도했던 미국 원자에너지위원회(AEC)와 영국 원자에너지청(AEA), 프랑스의 원자에너지원(CEA)은 핵의 군사적, 비군사적 사용을 모두 관장했다. 순수한 과학연구 목적의 원자로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한 인도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핵의 민간․상업적 이용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정치․군사적 목적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도 핵개발 초기에 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확산된 것은, 핵에너지의 장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과장된 선전, 관련된 과학자들의 열광적인 지지, 산업체의 낙관주의, 언론의 대대적 호응,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도 옛 얘기일 뿐이다. 본격적인 반핵운동이 벌어지고,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거치면서 핵에 대한 대중의 환상은 모두 깨졌고,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힘을 잃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사고는, 핵에 관한 한 20세기 중반에 머물고 있고, 진보정당 또한 냉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핵무기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이 영구히 억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갈파했던 노벨상 수상자 52명의 마이나우 선언(1955)처럼, 이판에 핵에 관한 과학기술자 선언을 조직하자고 하면, 당신은 대략난감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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