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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날인, 감시 카메라. 우리를 ‘빅 브라더’의 시야 속으로 끌어들이는 도구들이다. 저작권, 특허. 우리를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 안에 잡아두는 수단들이다. 늘 경계해야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되나. ‘확!’ 하고 와 닿는 느낌이 없어서 가끔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하다. 세상에 공짜 없다고 이 정도쯤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정도쯤’으로 사회에서 내쫓기고, 심지어 생사마저 갈리는 삶이 있다. 국내에서 에이즈가 발견된 지 22년이 지난 오늘, HIV/AIDS 양성(+)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의 삶이다.
감염인들은 지문 날인으로도 부족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성 관계 때, 콘돔을 사용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다. 또한, 정부와 병원 그리고 사회는 감염인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유한다. 공무원은 역학조사를 하면서 감염인의 성 정체성과 출신학교를 묻는다. 의사의 말실수로 어느 임산부는 병원에서 쫓겨나야 했다. 고용주의 무지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만 힘겨운 것이 아니다. 에이즈와 에이즈로 인한 기회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드는 약값은 일주일에 수백만 원을 헤아린다. 치료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차라리 술을 사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생명보다 이윤인 제약회사와 국민보다 기업인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허의 강화만이 ‘부의 미래’라고 외친다.
비감염인들에게 빅 브라더는 여전히 실체가 애매모호한 소설 속 인물이다. 반면, 감염인들에게 빅 브라더는 끔찍한 현실이다. 비감염인들에게 제약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감조차 희박하다. 그러나 그 손은 감염인의 목을 죄는 검은 손이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제약회사의 소비자로서 감염인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은 비감염인도 늘 접하는 현실이다. 때문에 그들의 분노와 절망을 그들만의 것으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네트워커 40호 표지 이야기는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과 함께 뒤늦게나마 HIV/AIDS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특별하지만 결코 특별할 수 없는 감염인들의 일상을 서툰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리고 후천성면역결핍증보다 더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후천성 ‘인권’ 결핍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