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미디어의난
'유씨씨 : 자본의 콘텐츠 확보 전략,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만...'
대안은 없을까

조동원 / gomediaction.net   jonairshi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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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이중착취 신호”

광대역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방송 채널을 통해서, 그리고 본격화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미디어 서비스를 통해서 수백, 수천 개의 채널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 채널들을 채울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 콘텐츠의 다양성은 부재한 채 그렇지 않아도 지긋지긋한 상업주의가 도처에 만연하고 있고(유비퀴터스), 대부분의 콘텐츠가 유료화 되는 경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 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호들갑 떨며 반기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 역시 도처에 유비퀴터스되어 한번쯤 들어보게 되는 “유씨씨(UCC)”다.(*1)
그런데 이 말이 새롭게 만들어져서 그렇지, 유씨씨는 가깝게는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디지털 제작・배급 장비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후, 전문 제작 단체에 속해 있지 않거나 비전문적인 개인이 직접 만든 미디어 콘텐츠(비디오 등)가 양적으로 많아지게 되면서 점차 보게 된 것들이다. 그러면서 주류 방송의 일정 시간대 혹은 아예 채널 하나를 기존의 시청자였던 사람들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방송하자는 퍼블릭 액세스도 유씨씨가 아니고 무엇일까. 아주 멀게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 이후 기업 형태의 미디어 제작・배급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 ‘창작자’라는 전문 직업 계층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오히려 유씨씨가 대부분의 창작 과정이었다. 그 유(U)가 가리키는 이용자가 인터넷 이용자로 국한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포토숍과 같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같은 것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인터넷을 떠돌던, 촌스럽기도 하지만 참신하기도 한 콘텐츠들 역시 유씨씨였다.
이렇게 이미 다 있었던 것이니만큼, 최근에 이를 두고 갑자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에는 뭔가 혐의가 있다. 더군다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많은 유씨씨들이 저작권법으로 보장받는 타인의 저작물을 해적질한 것으로 매도당하며 그 유(U)들을 돈 물리거나 가두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여전히 유씨씨는 대부분 ‘해적질’해온, 소위 저작권 이용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온 기존 방송, 스포츠, 영화, 광고 등의 콘텐츠를 가지고 짜깁기하는 수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도(*2), 이제는 널리 진흥되고 있다.(*3) 여전히 저작권을 위반하는 유씨씨인데, 왜? 무엇보다도 유씨씨 가지고 장사가 될 거냐 안 될 거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방문자 1천만 명, 1일 페이지뷰 1억 회, 1일 재생횟수 4천만 회를 기록하고 있는 유튜브(youtube.com)를 16억 5천만 달러를 들여 구글이 인수한 사례는 유씨씨로 돈이 되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러니 거대 미디어 자본이 “이용자들의 순수한 ‘참여’정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손쉬운 장사”를 해먹으려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자들을 ‘이중착취’하겠다는 신호이자 의지의 표현”(*4)이라고 보는데도 일리가 있다.

융합미디어 환경의 자본의 생존전략 : 유씨씨로 어떻게 안 될까

더군다나, 아이피티브이(IPTV) 사업자인 케이티(KT)와 하나로텔레콤도 유씨씨 확보에 나섰다. 2010년까지 아이피티브이가 약 1조 8,033억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고, 유씨씨가 향후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버젓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나로텔레콤은 이미 시민방송(RTV)과의 제휴를 통해 시민제작참여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유씨씨를 가져다가 쓰고 있다. 그런데 웹에서의 유씨씨는 제작 도구이자 채널이며 상영 공간이고 공유와 소통이 상호적인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생산자-이용자가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과 직접 만나는 방식이었다면, 아이피티브이 등의 융합미디어에서는 마치 기존 방송 산업의 콘텐츠 제공업자 같은 중간 서비스 업체를 통해서 유씨씨가 제공되는 형태가 될 것이고, 융합미디어 업자들 역시 일종의 포털 형태로 프로그램 가이드(EPG)와 셋톱박스의 기술적 특성을 이용한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서비스로 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이용자 창작 콘텐츠들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가지고 장사를 해먹겠다는 업자들에 의해 그나마 자유롭고 자생적인 미디어 생산-이용 문화의 흐름이 상업적이고 폐쇄적인 서비스로 제한되고, 기왕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라든가 독립/대안/공동체 미디어 콘텐츠마저 그 의미가 탈각된 채 상업적 맥락으로 전유되어버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자본의 전유와 대안의 모색

하지만, 유씨씨를 무조건 자본에 의한 (이중) 착취로만 볼 일은 아니다. 현재의 인터넷 미디어 문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뭔가 현재의 변화가 무조건 자본에 의한 착취와 포섭의 고도화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임에는 확실하다. 미디어 문화 생산수단의 대중화와 미디어 생산-이용 방식의 민주적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대중적인 현상이 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때, 융합미디어 환경의 미디어운동 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리고 독립영화 및 미디어운동 차원에서의 독자적인 온라인 전략 모색과 실행 기획 작업들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실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독자적인 온라인 배급망과 상영(play)을 위한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시도가 최근 몇 년 간 부쩍 많아지는 상황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폭발적으로 진행된 ‘웹의 진화’와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실험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광대역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곳에서, 그리고 광랜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무선 통신망을 통한 (멀티) 미디어 콘텐츠의 공유, 공동 편집, 전국적(전 지구적) 배급과 액세스를 위한 조건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상황은 더더욱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시급해지는 과제는 이러한 생산 관계의 변화, 미디어 생산방식의 변화의 진보적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기획으로 가져가는 일이다. 뻔한 자본의 전유과정, 그 강력한 흡인력으로 그 잠재적 가능성이 파괴되고 있는 유씨씨를 보면서, 보다 시급하게 재전유의 담론-언어 개발, 정치기획으로서의 대중 미디어(popular) 전략,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의 과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 1. 영어권에서는 유쥐씨(UGC, user generated content)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융합미디어 환경에서 앞서가는 한국은 영어권에서 들여올 것도 없이, 유씨씨니 디엠비니 와이브로니 (국제적으로 잘 통용되지도 않는) 영어 표현을 아예 새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 2. 그런 차원에서 유씨씨라는 말은 유엠씨(UMC, User Modified Content)나 유씨씨(UCC, User Copied Content)로 불리기도 한다. 유씨씨의 90% 이상이 “저작권 미해결 콘텐츠”이고 “뜨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이라는 통계도 접할 수 있다.
* 3. KBS는 VJ들이 만들어오는 것들만으로는 콘텐츠 수급이 안 되었던지 유씨씨 공모전을 열고 나섰다. 물론 정치적 관점이나 저작권과 같은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생산하는 이용자들에게 모두 전가되고 있다.
* 4. 양기민, “미디어 자본의 이중 착취 신호, UCC,” 웹진 문화사회(http://culturalaction.org), 200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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