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레니의'떼끼'
누구를 위해 콘텐츠는 생산되는가 - UCC

레니 / 진보네트워크센터 기술국 자원활동가   renegad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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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라는 단어를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분명히 1년 전만 해도 이 단어는 ‘업계 용어’였습니다. 작년에 팀장이 뜬금없이 "혹시 UCC라는 말 아나?"라고 저한테 물었을 정도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단어였죠. 일본에서 UCC 커피를 발견하고 속으로 킥킥댔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군요. 블로그나 게시판, 그리고 일부 기사 등에서 반드시 부연 설명과 함께 쓰여지던 이 말이, 어느 날 갑자기 신문과 TV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엔 아예 부연 설명도 달아주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로 UCC라는 단어는 상당히 일반화되었죠.
참으로 허무한 것은-아마 다들 아시겠지만-UCC가 User-Created Contents의 약자라는 겁니다. 영미권에서는 UGC(User-Generated Content)로 많이 불리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사용자에 의해 생산된 콘텐츠’라는 것으로, 최근에 생긴 개념이 아니라 피씨통신의 게시판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UCC라는 개념은 전 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Web 2.0과 비슷하게,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개념을 포장만 바꿔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UCC라는 단어 자체를 마케팅 용어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UCC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이 단어가 널리 뜨게 된 배경입니다. UCC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검색해 보면 아시겠지만, 상당수가 동영상 UCC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검색의 최대 이슈가 동영상 검색이라는 점과 최근 구글에 인수된 유튜브(YouTube)를 생각해 볼 때, 예전에 비해 동영상이라는 포맷의 비중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죠.

동영상의 급부상은 충분히 수긍갈 만한 현상입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 할 때 동영상만큼 직관적이고 분명한 수단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영상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제약이 존재했는데, 첫째는 동영상을 부담 없이 끊이지 않게 볼 수 있는 충분한 네트워크 환경이 조성되어야 했었고, 둘째는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캠코더 같은 장비와 프리미어 등의 동영상 편집 툴을 다룰 수 있는 상당한 고급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산자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자의 제약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네트워크 기술에 의해 극복되고 있었지만, 후자의 제약만큼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죠.
동영상 UCC가 각광받는다는 것은 이런 제약들을 넘어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말로 이해 가능합니다. 멀티미디어 작업에 능숙한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쉽고 간단한 동영상 제작 툴도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들이 가능한 것이겠죠. 이런 변화는 비단 동영상뿐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이미지 등 전반적인 UCC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데요, UCC가 주목받게 된 데는 이렇게 두터워진 생산자 층이 큰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VI 에디터만큼이나 어려웠던 하이텔의 문서작성기(당시 글 하나 올리는 데는 상당한 난관을 돌파해야 했습니다)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지금의 문서/이미지/동영상 편집기들은 분명히 보다 많은 사람들을 생산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테니깐요.

이러한 UCC 시대에는 생산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구조가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든,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든, 또는 한 몫 잡아보기 위해서든, 동기가 어떻든 간에 생산하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고, 생산된 UCC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펌글이 넘쳐나고 있는 한국의 블로그들과 자신의 마당 안에서만 자유로이 놀 것을 허용하는 닫힌 포털의 구조에서 이러한 참여 구조가 제대로 정착될 지는 의문입니다. 임정현 씨(주 : 파헬벨의 캐논을 전자기타로 연주한 동영상으로 화제가 된 인물)가 유투브에 캐논을 올려놓지 않고 국내 포털의 한 블로그에 올렸다면, 이 콘텐츠는 해당 포털 안에서는 유명해질 수 있겠지만 외부로 알려지는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알려지더라도 펌에 펌을 거쳐 원작자가 누군지도 불명확한 채 네트워크에서 떠돌 가능성이 크겠죠. 따지고 보면 포털들은 UCC 시대의 화려한 만개를 꿈꾸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UCC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용어 자체를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그랬듯이 업체들은 새로운 수익모델로서 UCC를 밀려 할 것이고, 이는 사용자에게 콘텐츠 생산 비용을 전가함과 동시에 UCC 풀의 닫힌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또한 강화되어가는 저작권의 개념과 UCC 생산자의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있어서 역시 UCC 열풍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UCC에 대한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약간은 자조적인 설명과 UGC에 대한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희망섞인 설명이 이루는 대조가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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