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호 칼럼
호주제 폐지와 신분등록제도

이구경숙  
조회수: 3051 / 추천: 56
지난 8월 말, 호주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법무부의 민법중개정법률안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면서부터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여성계와 유림으로 대표되는 양측의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호주제는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출생, 혼인, 사망, 이혼 등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하는 신분등록제도인데, 기록의 기초단위로서 ‘가(家)’를 사용하고 있고, ‘가’를 구성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하는 제도이다. 즉 법적으로는 한 ‘호적’ 내에 있는 사람들만을 한 가족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중심의 ‘가’는 실질적인 가족관계와 다양한 가족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가’에 입적한 자만 가족의 범위에 속하게 되므로(779조) 자동 분가한 차남이나, 특히 결혼한 딸은 사위의 호적으로 들어갔다 해서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닌 것이다. 반대로 남편이 외도하여 아이를 낳은 경우, 이 아이는 아내의 의사와 관계없이 남편의 가에 입적하여 가족이 된다. 여기서 민법상의 ‘가’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에 상당한 차이가 드러남을 알 수 있으며, 부계혈통만을 강조함으로써 실질적인 가족공동체를 법체계안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호주승계순위와 부가(父家·夫家) 입적조항, 부성강제조항도 문제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들-손자-미혼인 딸-배우자-어머니 등 남성을 우선으로 하여 호주승계순위를 정하고 있는 점, 그리고 혼인신고시 부부의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 시아버지 또는 남편을 호주로 하여 호적을 편제하는 점, 자녀 출생시에도 당연히 아버지 호적 밑으로 입적을 하는 조항은 현실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자녀를 데리고 사는 이혼 또는 재혼여성의 경우, 자녀와 호적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을 뿐더러, 실질적으로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엄마나 양부가 자녀에 대한 법적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생부의 성씨만을 따르도록 한 부성강제조항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특정 성(性)의 성씨(姓氏)만을 따르도록 한 것이므로 남녀차별이며, 현실적으로도 재혼가정의 아이들이나 엄마의 성씨를 따르고 싶어하는 이유를 가진 자녀들의 복리를 침해하고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국민의 신분등록과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법무부의 민법개정특위에서는 호주제 폐지 이후 개인별 신분등록부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진행중인데, 이는 현재의 비현실적인 호적 대신 개개인이 자신의 신분변동사항을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성단체에서 계속 주장해오던 대안 중의 하나이다.
이 시대는 가족 구성원간의 평등하고 자율적인 관계, 나아가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과 친밀성에 기초한 공동체를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출발한 16대 국회는 내년 총선이 오기 전에 이러한 구시대적이고 성차별적 악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