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호 정책제언
나를 얼마나 노출시킬 것인가?
‘위치정보의이용 및 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에 붙여

이장규  
조회수: 3115 / 추천: 52
지난 여름,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여대생을 납치해 1억 원의 몸값을 받아낸 뒤 살해한 납치범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사건이 일간지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 기사의 내용 중간에 ‘경찰은 납치된 여대생의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 마포구 망원동 성산대교 북단 한강둔치에서 범인을 붙잡았다’는 짤막한 글이 있다.
경찰이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여 범인을 잡을 만큼 기술이 발전되었으며, 그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흉악한 범인을 잡았으니, 그 기술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 기사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만 매달면 필요할 때는 항상 휴대전화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위치가 누군가에 의해 늘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며 한편으로는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기분이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은 여기까지 와 있다. 어느 휴대전화든지 그 위치를 정확히 계산하여 네트워크를 타고 그 정보가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그 휴대전화가 움직이는 곳을 늘 감시할 수 있다. 한강 둔치처럼 확 뚫린 공간이라면 10m 이내의 오차로 위치를 계산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때에 정보통신부에서 ‘위치정보의이용및보호등에관한법률’을 제정함은 시의적절한 일로 환영할 만한 것이다.

정보통신부에서는 지난 8월 18일 총 6장 34개조로 구성된 위치정보의이용및보호등에관한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항상 노출될 수 있는 시점에 입법예고된 이 법률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막고, 개인이 자기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데 그 기본정신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러한 기본정신 아래에서 법률이 제정되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 점이 좀 안타깝다.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치정보의 생성 및 제공에 대한 권한이 개인위치정보주체인 개인에게 있어야 된다. 휴대전화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트워크기반시스템이요, 다른 하나는 단말기기반시스템이다. 네트워크기반시스템에서는 휴대전화가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 신호 또는 그밖에 위치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신호를 중앙기지국으로 보내어 그 곳에서 정확한 위치를 계산한 후, 다시 단말기로 전송해 주는 것이고, 단말기기반시스템에서는 반대로 위치 계산에 필요한 신호를 중앙기지국이 단말기로 보내 단말기에서 자기 위치를 계산하고 필요하면 계산된 위치를 중앙기지국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네트워크기반시스템에서는 개인의 모든 위치정보가 중앙기지국에 있고 단말기기반시스템에서는 개인의 단말기 안에 있다. 개인위치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말기기반시스템이 채택되어야 한다. 법률안 제12조에 적힌 “누구든지 개인위치정보주체 또는 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 당해 개인 또는 사물의 위치정보를 수집, 이용 및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은 위치정보를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을 때 확실히 지켜질 수 있다.

위치정보의이용및보호등에관한법률이 화재, 조난 등 긴급상황에 119구조대와 같은 공공구조기관이 개인의 위치정보를 요청할 때 제공해 주는 것과 같은 공공목적의 위치정보 이용 기반 조성을 위한 것이라면, 어차피 모든 휴대전화에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장치를 의무화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법에서 위치정보의 수집, 이용 및 제공에 관련된 기술로 단말기기반시스템을 채택하도록 못 박는 것이 제일 좋겠다. 만약 법률에 구체적인 기술을 못 박아 놓는 것이 어렵다면, ‘정보통신부장관은 위치정보사업자가 공공목적을 위해 위치정보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사항 등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이 법안의 25조 2항에 대한 시행령을 정할 때 반드시 단말기기반시스템이 채택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GPS칩이 내장된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은 네트워크기반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적 편의에 의거한 것이다. 단말기기반시스템은 네트워크기반시스템과 비교해서 단말기의 연산량이 많아진다. 즉, 단말기 값이 좀 비싸질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위치정보 보호를 위해 그만한 값은 지불해도 좋겠다. 반도체와 컴퓨터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말기기반시스템을 채택하여 추가로 지불해야 되는 단말기 값은 미미할 것이다.

이 법률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막고, 개인이 자기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데 그 기본정신을 두고 있는지 의구심이 가는 또 한 가지 점은 법률안이 이중성을 가진데 있다. 위치정보 이용에 대한 진흥과 규제를 이 법에서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이다. 위치정보의이용 및 보호등에 관한법률이 ‘위치정보의 이용을 통하여 국민생활의 향상과 공공복리의 증진을 도모하는 한편, 위치정보의 오남용으로부터 사생활의 비밀 등을 보호함으로써 안전하고 건전한 위치정보 이용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참여연대가 이미 제시한 것처럼 위치정보 이용기반 조성을 서술한 5장은 이 법에서 분리돼야 한다. 기술의 발전과 확산은 돈벌이가 되는 곳에서 활기를 띠게 돼 있다. 위치정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위치정보사업자나 위치기반서비스사업자를 국가가 나서서 지원할 필요는 없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정보 이용 체계를 확립시키는 한편, 위치정보의 오남용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래 동안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데 종사해 온 한 사람으로서 기술의 쓰임과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만큼 우리의 행복증진에 공헌하고 있는가? 위치정보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한편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인가? 위치정보의이용및보호등에관한법률이 제대로 만들어져 위치정보시스템 기술이 개인의 행복증진에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