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칼럼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키워드 ‘반테러’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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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에 다시 나섰다. 월드컵 안전을 명분으로 한 2001년∼2002년의 테러방지법안 제정 시도는 인권·사회단체들의 강한 반발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정 반대 의견 표명 등에 의해 무산된 적이 있었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반대 이유의 핵심은 법안이 과거부터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연장선 상에 있는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점이었다.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 산하에 새롭게 설치되는 대테러센터가 다른 기관들의 대테러 활동을 기획, 조정하고 정보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국정원은 어떤 정보를 누가, 어떻게 수집하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비밀정보기관이다. 그나마 국정원을 민주적으로 감독하기 위해 설치된 국회 정보위원회 역시 비밀주의로 인해 제대로 된 통제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밀정보기관이 존재하는 한 그것에 대한 민주적 통제란 애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비밀정보기관의 권한 강화는 곧 기본적 인권의 제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직접적인 인권침해뿐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활동에 대해 사전적인 규제, 감시의 강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올해 수정안을 마련해, 다시금 법안의 국회 통과를 노리고 있다. 수정안은 테러와 테러단체의 개념을 고치고, 벌칙 조항을 없애는 등 법안을 부분적으로 손질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다.
테러방지법에 목매는 국정원의 이러한 움직임은 탈냉전 이후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선 전 세계적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테러리즘’이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9·11을 계기로 ‘테러’는 공공의 적, 국가안보의 적으로 전면에 부상했다. 냉전 시대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적이 ‘공산주의’였고 그것이 국민 통제, 국가권력 강화의 근거로 이용됐다면, 이제는 ‘테러’와의 전쟁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 공안기관들은 내국인들 사이에서 테러에 대한 공포를 한층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조직을 확대하고 권한을 강화하는 데 이러한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9·11 이후 대테러 활동이란 이름 하에 내·외국인의 통신에 대한 감시, 형사소추기관의 수색·압수권한의 강화, 개인정보 보호조치의 약화, 자의적 체포·구금, 외국인에 대한 차별 강화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각 국에서 새롭게 제정되거나 강화된 국가보안법, 반테러법은 이러한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 다른 나라들처럼 ‘테러와의 전쟁’이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키워드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이미 이 땅에선 국가보안법 하에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유린하는 야만이 50년 넘게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은 다른 나라들에서 새롭게 제정된 반테러법의 ‘대선배’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색깔몰이가 국민들에게 그대로 먹히지 않는 현실의 변화 속에서, 국정원은 ‘테러와의 전쟁’을 자기 조직의 보존 및 강화의 새로운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반공주의’와 냉전적 질서의 요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 마당에 우리들은 또 하나의 산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2001년∼2002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막기 위한 인권단체들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활동 속에서 ‘반테러’라는 것이 기존의 ‘반공주의’와 더불어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한 축으로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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