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표지이야기 [누가 인터넷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될까?

장여경  
조회수: 1828 / 추천: 39
2000년 5월 22일 프랑스 법원은 인터넷 포털 야후(Yahoo!)가 나치 상품을 경매하는 것이 위법이라며 벌금형을 선고하고 프랑스 국민이 접속할 수 없도록 조치하라고 판결했다. 야후가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만(卍)자 메달, 총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용됐던 가스통 등 1천여 점의 나치 유품을 판매한 것이 반인종주의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프랑스 국내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야후는 이 판결에 크게 반발하였고 이듬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에서 프랑스 법원의 판결이 미국에는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표현의 자유 운동 진영의 반응이 묘하게 갈렸다. 미국 시민단체들은 미국 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면서 이 문제가 인종주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관할’의 문제이며 ‘접근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애초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던 프랑스 인권단체들은 인종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차별이고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였다.
관할 문제를 떠나 이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은 표현의 자유인가 차별인가. 동성애를 비하하는 발언은 표현의 자유인가 차별인가.
최근 신보수주의의 창궐 속에 ‘백인우월주의’ 등 혐오주의 사이트가 증가하면서 표현의 자유 운동 진영에게 차별의 문제가 어려운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 논쟁이 주로 음란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면서 포르노 사업자들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양상을 보여왔던 표현의 자유 운동이, 성폭력적 음란물의 무차별 배포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우후죽순격으로 증가하고 있는 성폭력적 음란물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발언은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의 원칙이 정부의 자의적인 검열이나 차단을 방지하면서 적용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의 검열은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안은 인터넷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차별과 인권 침해의 범주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 장애인이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인권 침해임을 명확히 한다면 인터넷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규제 권한을 확대해 온 한국 정부가 인터넷 확산을 위해 인터넷 음란물을 ‘필요악’으로 방치하는 이중적 태도는 매우 모순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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