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나와
“컴퓨터가 편리하긴 해도, 손으로 파는 그 맛은 없어”
도장과 함께 한 35년 …손으로 파던 도장, 이제는 컴퓨터로

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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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주(이하 서): 요즘에도 도장을 파서 쓰는 손님이 많은가요?
홍연수(이하 홍): 옛날보다 오히려 더 많아졌지. 요즘도 하루에 15명 이상이 도장을 파러오니까.

서: 도장 파는 건 언제 배우셨어요?
홍: 30살 때부터 시작했지. 노점상 할 때 옆에 도장 파는 사람한테 6개월을 배웠는데, 배운 것 없고 먹고 살려니까 시작했는데... 처음에 자리잡은 곳이 용산역 근처였어. 벌써 35년이 지났구만.
용산역은 수화물이 오고가니까 인부들이 화물 인수인계 하느라고 도장을 많이 필요로 했거든. 그러다 82년도에는 도장기술 자격증까지 땄어. 지금이야 컴퓨터 한 대 사서 아무나 도장을 만들지만, 그땐 자격증이 있어야 도장을 팔 수 있었거든.

서: 도장 파는데 컴퓨터를 사용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홍: 2년 전에 7백만원을 들여서 컴퓨터를 들여놨는데, 처음에 들여놓고는 잘 몰라서 고생 많이 했어. 내 나이 65살인데 컴퓨터를 배우는 게 쉬운가. 그래서 한동안은 손으로 파나 컴퓨터로 만드나 도장 하나 파는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더니, 이제 많이 숙달이 돼서 목도장은 3분이면 돼.
하지만 고급도장은 달라. 손으로 파려면 30분 이상 걸리는데 컴퓨터는 10분이면 하니까, 시간도 덜 걸리고 파는 사람도 편하고...

서: 일부러 손으로 도장을 파달라는 사람도 있나요?
홍: 가끔 있지. 그리고 아직도 작품에 찍을 낙관은 칼로 파야하거든. 그림이나 글을 쓴 사람의 개성이 표현돼야 하니까 일부러 손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어. 제대로 하면 작품 하나에 4개의 도장이 필요한데, 다 손으로 해달라고 해. 그래야 맛이 나니까.

서: 컴퓨터로 도장을 만들어 주면 반응은 어떤가요?
홍: 컴퓨터로 파서 주면 “빨리 파서 좋다” 소리만 해. 사람들이야 빠르면 좋아하니까. 하지만 손으로 도장을 팔 때는 나부터도 ‘다 했다’, ‘보람있다’ 그런 느낌이 있는데, 컴퓨터로 파는 건 그런 느낌이 없어. 그리고 도장의 맛도 다르고.

서: 어떻게 다른가요?
홍: 손으로 파는 건 칼날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글자의 느낌이 매번 달라지거든.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탄다는 건데... 컴퓨터로 파는 것도 글자간격이나 크기, 서체를 달리해서 도장마다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손으로 하는 것만큼 다양한 맛은 없거든. 그나마 손으로 도장을 팔 줄 아는 사람은 컴퓨터로 하더라도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기 때문에 다르게 나올 수 있지만 말야.
만들어 놓고 100% 만족하는 도장이란 건 없지만, 도장에도 나름대로의 맛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래도 컴퓨터로 하는 건 그 맛이 덜해.

서: 그럼 앞으로 사람이 도장 파는 일은 없어지겠어요?
홍: 기계가 범람하면 오히려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이 중요해질지도 모르지. 사인할 일이 아무리 많아져도 일일이 사람이 쫓아다니면서 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도장의 역할은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도장을 너무 쉽게 여겨. 쉽게 파니까 가볍게 여기고 ‘도장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데, 찍기 전에 한번쯤은 더 고민하고 도장을 눌러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도장의 역할과 필요성이 나름대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생각해.

사진 : 김정우 / 네트워커::patcha@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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