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여기는
대한민국 네티즌의 남성주의
군가산점 논쟁부터 빠순이 논란까지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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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네티즌은 진보적이다. 지난해 ‘붉은 악마’와 ‘촛불시위’는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하고 미국에 반대할 줄 아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특히 ‘노사모’ 등 네티즌의 조직적인 활동은 대통령 선거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이나 언론개혁과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네티즌 여론은 일반 여론보다 진보적인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여성문제에 관한 한, 네티즌 여론은 일반 여론과 견해 차이가 거의 없거나 때로 훨씬 더 적대적이다. 한국일보가 지난 6월 여성의무고용 할당제에 대해 일반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에는 응답자의 80.1%가 이를 찬성했다. 그러나 미디어다음이 몇 달 후 여성정치인 비례대표제에 대해 조사했을 때, 네티즌의 74.3%가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주목할 부분은 설문조사 그 자체보다 네티즌들이 직접 올린 의견에 있다. 많은 네티즌이 주어진 주제와 무관하게 여성운동과 여성부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더불어 군가산점 문제에 대한 의견들이 게시판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네티즌 ‘가람’은 “남자들 군가산점 없애더니, 이제는 할당제 통해서 밥그릇 찾아가네”라고 올렸고, 네티즌 ‘ㅎㅎgg’는 “좋아요. 남녀평등 이룩하자고요. 그러고 나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남녀공동징병이지요. 페미들이랑 여자부는 입에 개거품 물고 반대하겠지만^^ ㅋㅋ 싸가지들”이라고 조소했다.

남성 네티즌, “여자도 군대가라”

그렇다.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공무원채용시험의 군필자 가산점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 네티즌 사이에는 여성운동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불거지기 시작하여 몇 년째에 이르고 있다.
당시 원고는 장애인과 여성이었는데 유독 여성단체에 대해서만 비난 여론이 집중되어 여성단체 홈페이지는 분개한 남성 네티즌에 의해 도배되거나 해킹 당했다. 이들의 주장은 “여성에게도 국방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여성문제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는 게시판마다 군가산점 문제로 수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호주제 폐지 문제로 몸살을 앓는 여성부 홈페이지에도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장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러한 ‘여성주의 혐오’는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으로도 비화했다. 여러 대학 총학생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는데, 유독 이화여대 총학생회에 대해서만 비난 여론이 쏠렸다. “군대도 안 가는 여성들이 무슨 병역거부운동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는 여성비하적 글들이 폭주하여 홈페이지가 마비되었고 30회 가까이 성폭력 글을 게시한 20대 남성 네티즌은 법원에서 징역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경우가 아니라도 병역 문제는 오늘날 대한민국 네티즌에게 절대화된 문제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논객들도 ‘어쨌건 군대 안 가겠다는’ 병역거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냈으며 병역 문제에 대한 이들의 감수성은 지난해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졌던 대통령 후보의 ‘안티’를 자임하게 했다.
이들의 공분을 사게 된 또 한 사람으로는 일명 ‘무뇌충’, 가수 문희준을 꼽을 수 있다. ‘안티 문희준’은 지금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안티 문희준 사이트만 여러 개에 이르며 무뇌충을 조롱하는 연작 플래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가수 문희준이 안티의 대상이 된 시점은 1990년대 말 나우누리 유머란 등에서 문희준이 속해 있던 아이돌 그룹 H.O.T의 멤버 대다수가 병역 면제 대상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안티 문희준의 표면상 이유는 ‘락을 사칭한다’는 것이지만, 이 현상은 락의 수용층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의 핵심은 역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안티 흐름은 소녀팬들, 일명 ‘빠순이’들과의 잦은 충돌을 통해 더 고양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성주의 저널 ‘일다’(http://www.ildaro.com)의 홍문보미 기자가 이런 흐름이 전형적인 여성비하현상이라고 분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홍문 기자는 기사에서 “안티문희준들의 공격 대상에는 ‘무뇌충’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양념처럼 껴있는 것이 바로 ‘빠순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안티 문희준 현상에서 문희준 만큼 소녀팬들이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여성 혐오’라는 면에서 안티 문희준 현상은 군가산점 논쟁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의 논쟁을 인구학적으로 분석한다면 군대에 징집되어 젊음을 바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사회에서 박탈감에 시달리는 청년실업자의 고단한 삶이 등장할 법하다.

엉뚱한 곳을 향한 분노

정보통신부의 올 6월 발표에 따르면 네티즌의 대다수는 20대 남성 이용자이다. 연령대가 낮기 때문에 나타났던 네티즌의 정치적 진보성이 여성주의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문제는 이들의 분노가 자신의 고단한 삶을 낳은 구조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에 의해 누구보다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군가산점과 병역거부 논쟁 그리고 빠순이 논란에 이르기까지, 분노의 ‘쉬운 상대’를 찾았던 것이 아니었는지 이들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사회의 차별적인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군가산점 논쟁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것이 ‘젊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자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 우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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