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이동영의
버스카드로 시작하는 신기술
무선인식기술과 프라이버시

이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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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카드가 처음 나왔을 때 그 편리함에 감탄한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번거롭게 잔돈을 준비하고 거슬러 받는 대신, 미리 충전한 버스카드를 판독기에 갖다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지불되는 것이 무척 편리했다. 반드시 직접 닿을 필요도 없이 가까이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버스카드이지만,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신기술이다. 첫째는 보안을 위해 지난 호에 다룬 것과 같은 암호화 기능을 카드 안에서 수행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카드의 판별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첫 번째 기술을 스마트카드(smart card), 두 번째 기술을 무선인식기술(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이라 부른다.

지능적인 기능의 스마트카드

스마트카드는 카드 안에 반도체 칩을 내장해서 단순히 읽고 쓰는 것 외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버스카드와 같은 비접촉식도 있고, IC 전화카드나 신용카드처럼 금속 접점이 있는 접촉식도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검은 띠가 있는 마그네틱 카드는 간단한 정보를 기록하는 데 불과해서 읽고 쓰는 기계만 있으면 쉽게 위조나 변조가 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카드는 반도체 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데다가, 카드 내부에서 암호화 등의 지능적인 기능을 할 수 있어서 훨씬 안전하다.
예를 들어 비밀키를 내부에 저장하고 연산도 가능하므로 지난 호에서 알아본 공개키 암호화 기술도 사용할 수 있다. 또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어서, 예전에 도입하려고 했던 전자주민카드나 전자의료보험증과 같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전자주민카드나 전자의료보험증이 스마트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버스카드도 스마트카드의 일종으로, 햇볕에 비추거나 얇게 잘라 보면 반도체 칩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도체 칩과 함께, 카드의 가장자리 부분을 따라 금속선(코일)이 둘러져 있다. 반도체 칩을 구동하고 무선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전력이 필요한데, 판독기의 자기장에 의해 이 코일에 발생하는 유도전류를 이용한다.
이러한 방식의 무선인식장치는 가까운 거리에서밖에 작동하지 않으므로, 자동차 통행료 납부 등의 용도로는 따로 건전지 등의 전원을 사용하기도 한다.

무선인식기술의 편리함

읽기만 할 수 있는 간단한 무선인식장치는 아주 작고 값싸게 만들 수 있어서, 유통업체나 물류업체를 중심으로 바코드를 대신해서 무선인식기술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상점에서 물건 하나하나마다 무선인식표를 붙여 두면, 손님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하나 집어들어 판독기가 달려 있는 카트에 담는 순간 가격이 표시되고 저절로 합산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다 신용카드까지 판독할 수 있도록 하면, 이제 계산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물건값 지불까지 끝낼 수 있다.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가며 계산하던 일이 자동화되고, 점원의 일자리는 없어진다. 판독기가 내장된 진열대가 재고 관리, 물품 주문까지 자동으로 알아서 한다. 도난 방지는 물론이다.
운송업체의 경우에도 운송물 하나하나마다 무선인식표를 붙여 두면, 현재 어느 물건이 어디에 와 있는지 쉽게 추적할 수 있다. 나아가 세탁기가 세탁물을 파악해서 저절로 알맞은 방법으로 빨래를 하고, 냉장고가 음식의 유통기간을 파악하고, 전자레인지가 알아서 즉석식품을 조리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세상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문제

편리함의 이면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먼저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개인들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금도 후불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매일매일의 동선을 카드회사에 보고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신용카드 정보까지 더해지면 더욱 엄청나다. 기업들이 교통카드와 신용카드, (위치추적이 가능한)이동전화와 신용카드를 결합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물건에 무선인식표가 붙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물건들의 목록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의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낱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게 주인은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소지물을 분석함으로써 성향을 파악해서 마케팅에 활용하고 싶을 수 있다. 공공 장소에는 위험한 물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파악하겠다는 명분으로 무선판독기를 설치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옷이나 소유물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표로 누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사람들에게 직접 무선인식표를 다는 것이다. 농장의 가축, 애완동물, 심지어 (미아방지를 위해) 어린이에게 무선인식표를 달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는가 하면, 사스(SARS) 감염자에게 무선인식표를 달아서 환자들을 관리한 사례도 있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피부 아래에 의료정보를 기입한 무선인식표를 심자는 제안은 바코드가 찍힌 인간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 세상이 오면 무덤을 찾는 일은 아마 아주 쉬워질 것이다. 누구의 무덤인지 무선판독기가 말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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