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6호 나와
“삥땅하는 운전기사 잡는다더니…”

서현주  
조회수: 4143 / 추천: 56
서현주(이하 서) : 버스운전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안건모(이하 안) : 대형면허로는 할 게 없어서 85년도에 시작했어요. 버스운행 코스를 한번 돌고 오면 2-3시간이 걸리니까 시간은 잘 가요. 근데 요즘은 버스 운전석에만 앉으면 졸려요. 이것도 직업병인지…

서 : 폐쇄회로TV(이하 CCTV)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처음 설치된 건 언젠가요?
안 : 제가 탄 차에 처음 설치된 건 5년 정도 됐죠 아마.

서 : 동료 기사들 반응은 어땠나요?
안 : 겉으로는 별다른 반응은 없었어요. 근데 한번 설치되니까 무섭더라고요. 다들 익숙해지고 결국 무감각해져요. 대부분의 버스에 CCTV가 다 설치돼 있는데, 어떤 회사는 수당으로 얼마 얹어주고 설치한 곳도 있더군요.

서 : 회사에서 처음 CCTV를 설치할 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안 : ‘삥땅’이라고 하죠. 운전사들 중에 요금통에서 돈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워낙 박봉으로 살다보니까. 그때는 운전사들이 다 삥땅을 한다는 걸 전제로 월급이 책정됐어요.
회사에서 그걸 막겠다는 게 명분이었죠. 효과가 있어서 지금은 ‘삥땅’이 없어졌어요.

서 : 근데 안 없애는 건…?
안 : 조심하라는 거죠. 언제든지 실수하면 걸리니까. 여직원들이 녹화테잎을 3배속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회사 내의 요주의 인물은 3배속도 아니고 테잎 전체를 보통속도로 보고요.
가끔 운전사들 근무태도를 지적하기도 해요. ‘운전 중에 담배 피우지 말라’ 뭐 이런 거죠. 녹화된 화면을 보면서 다 체크하나봐요.

서 : CCTV에 찍힌 화면을 본 적 있으세요?
안 : 언젠가 손님이 잔돈을 다 뽑아 가는 게 찍혔어요. 마침 내가 몰았던 버스라 화면을 보여주던데…. 솔직히 창피하더라고요. 하품하는 거, 고춧가루 꼈나 거울 보는 거까지 다 찍혀서. 삥땅 잡으려면 카메라로 요금통만 찍으면 되는데, 너무 넓게 찍더라고요.

서 : 버스 안이 어느 정도까지 보이던가요?
안 : 뒷문까지 다 보여요. 문이 열리면 바로 앞에 있는 센서가 작동하고 그럼 운전석 왼쪽에 있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켜져서 녹화가 돼요. 앞문이 닫히고 15초 후까지 녹화되고 멈춰요.
처음엔 CCTV가 싫어서 모자도 쓰고, 정면으로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를 돌려놓기도 했는데, 회사랑 줄다리기하는 거죠. 내가 측면으로 돌려놓으면 회사는 정면으로 돌리고, 만날 그래요.

서 : 버스를 이용하는 손님들 중에는 CCTV가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나요?
안 : 아마 설치된 것 자체를 모르는 손님도 많을걸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어요.

서 : 좋은 점도 있나요?
안 : 얼마 전에 버스기사가 손님한테 맞는 장면이 TV에 나왔잖아요. 우리회사에는 그것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어요. 10분도 넘게 맞았는데, 경찰에서 쌍방과실로 넣으려다 운전기사가 일방적으로 맞은 게 찍혀있어서 손님만 구속됐어요. 그런 건 좋아요.

서 : 이제 CCTV를 없앤다는 건 생각도 못하겠어요?
안 : 지방에선 노조가 싸워서 없앤 곳도 있다는데…
요즘은 버스카드 많이 쓰잖아요. CCTV 설치할 때 삥땅이 이유였으니까 버스카드로 다 교체가 되면 없애자는 이야길 할 수 있겠죠.

서 : 버스카드를 이용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어딜 다니나 추적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는데…
안 : 뭐든 쉬운 게 없죠. 다 연결돼 있으니까.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