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6호 정보사회
정보사회와 문화다양성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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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과 같은 인터넷 소설로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귀여니가 성균관대학교 수시입학 전형에 합격한 것을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이유인즉슨 주로 인터넷 소설에서 이모티콘이나 외계어를 부분별하게 사용하여 한글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 받고 있는 당사자가 어떻게 전통의 사학인 성균관대에 입학할 수 있는가하는 반대론과 인터넷 소설도 엄연히 창작행위의 하나이며, 인터넷에서 3권의 소설을 쓰고 사이버공간의 최고의 인기작가로 등장한 귀여니가 자신의 활동경력을 인정받아 수시입학에 합격한 것은 당연하다는 찬성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에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씨가 귀여니의 성대입학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쓰고, 이에 대해 자신의 창작행위가 자기 나름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귀여니의 해명글이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는 중이다.

‘귀여니 논쟁’은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편견에서 시작

귀여니의 수시입학 관련 논쟁은 ‘입학 자격’의 문제를 넘어서 인터넷문화를 포함한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어떤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보사회 테크놀러지의 편리함이나 소통의 신속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 안에 존재하는 콘텐츠나 그것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귀여니의 입학 자격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이 논쟁이 작가의 문학적 완결성이나 가치의 문제들이 지나치게 인쇄출판에서 요구될 수 있는 요건과 상응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이버여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도 이것이 현실제도 내에서는 공정한 여론으로 대접받지 못하거나, 온라인 정보콘텐츠들이 법적·제도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말하자면 문화적 권리, 혹은 권위,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보장과 활성화라는 중요한 의제가 정보사회 내에서는 아직 공론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디지털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정보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은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필수불가결한 가치이자 생리인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화다양성이 정보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문화다양성은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소통의 다양성 - 정보사회의 문화 다양성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보사회의 문화다양성은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고 보고 싶다.
첫째는 정보콘텐츠가 물리적 시공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국가나 민족-언어의 경계를 넘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보콘텐츠의 탈시간성이나, 탈공간성이 그 자체로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보가 소통되는 공간이 자유롭더라고, 소통의 결절점을 지배하고 있는 정보독점 자본이 존재하는 한 문화적 소통의 다양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보콘텐츠의 문화다양성은 정보를 분산시키고, 네트워크할 수 있고, 이익으로부터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고, 지배의 결절점을 와해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나는 이런 층위를 현실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익, 정보의 독점에 반대하는 ‘소통의 다양성’으로 말하고 싶다.

표현의 다양성 - 인터넷의 파급력때문에 더 많은 제약

둘째 현존하는 정보콘텐츠나, 그것을 매개하고 있는 인간적 활동이 얼마나 ‘문화적’인가하는 점이다. 모든 정보콘텐츠는 그 자체로 문화적일 수 있다. 그것이 영화콘텐츠이건, 음악콘텐츠이건, 프로그램 소스이건, 개인신상파일이건 기호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화 할 수 있는 문화적 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 존재조건으로서의 넓은 의미의 정의이고,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개인의 표현능력과 감각의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고, 그 활동에 대해 보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령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문화를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관습에 의해 대단히 제한되고 있다.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고 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소통되는 언어의 방식, 사고의 방식에도 편견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탈국가화된 인터넷에서의 정보생산과 소통의 자유는 엄격하게 현행 국가보안법이나 청소년보호법, 속칭 인터넷망법에 의해 규제받고 있다. 인터넷에만 가능할 수 있는 다양한 창작행위, 패러디행위, 정치적 표현, 성적표현의 행위 등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인터넷 소통에 필요한 언어와, 사이버공간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기호체계, 그들만의 삶의 양식들이 여전히 오프라인, 현실공간의 준엄한 가치관이나 도덕적 잣대로 평가된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 문화적 행위나 표현들은 겉으로 보면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파급력의 효과 때문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것을 ‘표현의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접근의 다양성 - 정보접근과 생산의 평등

마지막으로 정보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은 정보접근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이는 소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기존의 정보격차에 대한 운동은 주로 현존하는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물론 이 아젠다가 정보접근의 정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바로 정보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수단의 획득에 대한 접근권이다.
이른바 정보사회에서 ‘퍼블릭 액세스’는 정보의 수용만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모든 접근 양식들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정보의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문제는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실천의 영역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문화적 소수자들의 삶의 양식을 결정해주는 요인이 된다. 가령 노동자, 청소년, 성적 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들에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문제는 자신들의 삶의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를 ‘접근의 다양성’이라 말할 수 있다.

소통의 다양성, 표현의 다양성, 접근의 다양성, 이 세 가지 층위가 보장되고 활성화될 때, 정보사회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세 가지 층위 중 그 어떤 것도 소위 최첨단 정보사회라고 하는 우리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된 것은 없다. 정보운동이라고 하는 것도 다른 게 아니라 이 다양성을 실현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의 새로운 ‘진영짜기’가 필요한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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