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표지이야기 [웹을 자유롭게 하라!]
웹브라우저의 발명 그리고 10년
모자익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생산과 유통의 자유? 정보접근의 자유

장여경  
조회수: 4317 / 추천: 46
웹브라우저의 탄생
1994년. 웹브라우저가 상용화된 해이자 한국 네티즌에게 상용 인터넷망이 처음 선보인 해이다. 인터넷은 1969년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로 출발하였지만 당시에는 대중적인 네트워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989년 스위스의 입자물리학연구소의 팀 버너스 리가 엄청난 양의 자료를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새로운 정보 전달 방법으로 하이퍼텍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웹’이라 부르는 인터넷 서비스의 시초였다. 그러나 이 당시 웹은 그래픽화 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들의 접근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월드와이드웹과 웹브라우저의 등장으로 대중화된 인터넷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날과 같은 월드와이드웹 서비스는 대중이 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사용프로그램, 즉 웹브라우저의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2년 11월 미국 수퍼컴퓨팅센터에서 웹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모자익’이라는 웹브라우저를 개발하여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개발자인 마크 안데르센은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들은 사용법이 어려워 일반 대중의 사용을 막고 있다고 불평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모자익은 그래픽 사용환경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터넷 사용프로그램과 획기적으로 달랐다. 편리한 사용법으로 초보자도 쉽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크 안데르센은 모자익이 인기를 얻게 되자, 이를 관료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연구소에 반발하여 학교를 떠났고 짐 클라크와 모자익 커뮤니케이션스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1994년 세계 최초의 상용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를 발표하게 된다. 개발 프로젝트 이름은 ‘모질라’였는데 웹브라우저에서 ‘고질라’ 같은 존재가 된 모자익을 물리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넷스케이프가 발표될 당시 웹 사용자 수는 200만 명에 불과했으나, 곧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95년 여름에는 이미 천만명을 돌파하였다. 향후 파일전송(FTP), 텔넷, 뉴스그룹, 고퍼 등과 같은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들도 점차 웹브라우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웹브라우저가 인터넷 사용프로그램의 명실상부한 대표로 자리매김 된다.

웹진 대자보에 <인터넷 이야기>를 연재했던 정철호씨는 월드와이드웹 서비스와 웹브라우저의 등장으로 “인터넷에서 피동적인 위치였던 일반 사용자들이 능동적인 정보 제공자로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 이전의 인터넷은 데이터 창고로서 연구소, 학교, 기업 등 정보 제공자와 일반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는 편이었다면 홈페이지를 통하여 인터넷상에서 가상 공동체를 꾸리거나 정보를 서로 공유하게 되면서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터넷 사용 집단에 속하는 한국 네티즌들이 대중적으로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것도 웹브라우저의 보급에 즈음한 1994년부터이다. 이와 동시에 1994년부터 인터넷이 상용화되어 한국통신의 코넷, 데이콤의 보라넷이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그 이전까지 한국의 인터넷은 대학 등 학계나 연구기관에서 사용하는 데 그쳐 있었다.

웹브라우저의 등장으로 우리 생활은 많이 변화하였다. 정보가 일반 대중의 자유로운 조작 대상이 되었다. 과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보를 생산할 실질적 권리가 주어진 적은 없었다.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경로가 거대 언론사 등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보가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가치는 미래학자들이 주목했던 상품으로서의 정보 그 이상이다. 하지만 ‘정보 생산과 유통의 자유’ 만큼 ‘정보 접근의 평등’에는 아직 충분한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지 않다. 웹브라우저의 독점과 장애인 친화적인 홈페이지 설계가 대표적인 과제이다.

웹브라우저로 자유로워진만큼 평등에도 관심을
현재 인터넷 브라우저의 대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96%라는 놀라운 점유율을 발휘하게 된 것은 윈도라는 독점적 운영체제를 보급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여기에 자사의 웹브라우저이자 윈도에 최적화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함께 보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칭 ‘(운영체제에) 끼워팔기’라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응용프로그램 독점은 웹브라우저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플레이어, 이메일 프로그램, 메신저의 독점 논란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잡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특히 최근 들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동적 효과를 무기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의 배타적 독점을 확대하고 있다. 웹브라우저 독점은 다시금 검색서비스의 독점, 인증서의 독점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무한한 독점을 불러 온다. 넷스케이프가 4.0 버전부터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로 이름을 바꾸고 무료화, 소스 공개, 사업의 다각화 등 노력을 계속했지만, 넷스케이프의 모기업이 된 AOL-타임워너사가 얼마전 새로운 버전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넷스케이프는 현재 소멸 직전에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참여로 이루어져온 인터넷의 발달이 웹브라우저의 편향으로 인하여 일부 사양의 컴퓨터, 일부 계층만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된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정보 격차’는 곧 정보의 불평등을 만들고 이는 다시 사회 불평등의 확대로 악순환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지적재산권을 무기처럼 휘둘러 대는 무리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주장하기 전에 하이퍼링크(Hyperlink)에 대한 영업방법 특허가 현재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실제 개발자와 무관하게 찜하기 식으로 이루어진 특허 도둑질도 우스꽝스럽지만 당신들이 주장하는 인터넷상의 권리를 모두 누리려면 먼저 하이퍼링크를 비롯하여 아무런 대가 없이 마땅히 누리고 있는 인터넷의 모든 기능에 먼저 대가를 지불할 일이다. 정철호씨가 지적하는 대로 인터넷은 웹브라우저의 역사와 더불어 ‘개인들의 선의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만큼 인터넷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비판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