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영화
0.75평 안의 자유 ‘선택’
감독 : 홍기선 / 출연 : 김중기, 안석환, 최일화, 고동업 / 2003년

이안숙  
조회수: 3552 / 추천: 58
얼마 전 민가협에서 하는 목요집회가 500회를 맞았다. 목요집회의 주된 내용은 양심수의 석방과 국가보안법의 폐지다. 아마도 우리는 장기수의 이야기들을 이 목요집회를 통해서 들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사진 속에서 45년 동안 감옥에 계셨던 김선명씨의 존재를 알게 됐을 것이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어머니들은 보랏빛 수건을 쓰고 그의 석방을 외쳤고, 우리는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을 먹먹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인생의 절반이상을 보낸 감옥의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 ‘선택’이다.

김선명은 선택이란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게 아닌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이라는 말로써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설명한다. 폭력이 폭력을 생산하는 시대에 그 무자비한 공권력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김선명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그리고 그는 감옥 밖에서도 자신의 선택으로 북으로의 송환을 선택했다. 그가 없는 이 남한에서 우리는 그의 삶의 절반을 ‘선택’이라는 영화를 통해 그의 신념을 읽어 나간다.

‘선택’은 역시나 많은 관객들이 보지 않았다. 그것이 상업영화 안에서의 비주류 예술영화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우리 사회를 투영한 어두움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리고 선택을 살리기 위한 자발적 모임이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인 ‘선택’은 여전히 우리에게 명쾌하게 과거로만 존재했던 역사가 아닌 지금도 진행 중인 현재의 이야기이다.

비전향장기수이면서 양심수인 이 호칭에 포함된 뜻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신념이나 민족, 언어, 피부, 국가, 사회 등의 차이로 인해 투옥 구금된 모든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이야기되고 있는 양심적병역거부가 여기에 속하며 정치적인 신념과 자신의 이념을 지켜나가는 많은 장기수들이 해당될 수 있다. 이렇게 신념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담긴 작품이 바로 ‘선택’이다.

최근 ‘선택’을 만든 홍기선 감독은 제13회 민족예술상을 받았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수여하는 상이었는데, 그의 영화적 신념이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것 같아서 기뻤다. 홍기선 감독은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면서 ‘오! 꿈의 나라’를 제작했으며, 92년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선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장편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만들어, 한국의 켄 로치(영국의 유명한 좌파감독, 우리에게는 ‘랜드 앤 프리덤’과 ‘빵과 장미’로 알려져 있다)라고 불리기도 한다. ‘선택’도 준비와 완성까지 거의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졌다.

‘선택’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스물다섯에 국경수비법 위반으로 유엔군에 생포된 좌익수 김선명(김중기)이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어 새 감방동료와 새 좌익수 전담 반장 오태식(안석환)을 만나면서 생겨나는, 감옥에서의 45년을 다루고 있다. 인민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태식은 좌익수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많은 사람들을 폭력으로 굴복시켜 전향서를 쓰게 만든다. 그곳에서 김선명과 동지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절반의 선택이 아닌 완전한 선택을 꿈꾼다.

김선명씨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사람은 커다란 사상을 버릴 수 있어도 작은 양심은 버릴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

한편, 영화 속의 인물들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오태식 (비전향수 전담반 반장) : 이렇게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정치범이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학섭 (비전향 장기수) : 감상은 적입니다! 현실을 직시하시오. 동지!
남영만 (비전향 장기수) : 통일이 온다면... 버틸 수 있는데... 죽을 수도 있는데...
이영운 (비전향 장기수) : 아무리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도 양심을 버리고는 할 수 없지요!

이 말들을 하고 있는 장기수들은 우리주변에 존재하고 역사 속에 존재한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몸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감옥 속의 장기수들처럼 한쪽을 버리면서(그것이 개인의 행복이든 아니면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개인의 자유이든) 다른 한쪽을 지켜나가는 모습으로 역사 속에서 증언하고 있다.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장기수들과 아직도 감옥에 있는 수많은 양심수들과 더 나아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나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시대가 와서 함께 웃으며 이 시간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에게 각자가 지켜야할 신념과 양심이 존재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택’은 화면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12월 초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니, 혹 영화 속의 현실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보기를 권한다. 이제는 북으로 가셔서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선택’안에서 그들의 신념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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