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호 정보사회
장애인 정보접근권에 대하여

김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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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ICT)은 기존의 의사소통구조에서 소외되거나 경시되었던 계층에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특히 문자(text) 중심의 의사소통 환경을 뛰어 넘어 멀티미디어 세계에서의 의사소통 환경은 시각장애인 및 문자 해득 능력이 떨어지는 저학력 계층에게 자신이 소속된 지역사회 또는 공동체 등에 대한 정보획득뿐만 아니라, 타 구성원들과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원격(tele), 가상(cyber)이라 지칭되는 기술들은 기존의 의사소통 체계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공간 상의 제약들을 극복하도록 해 줘, 이미 공공시설 등의 정보 접근에 제약을 받았던 많은 중증장애인들에게 정보 획득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는 정보사회의 한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사회시스템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희망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기술의 발전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구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사실 ICT의 급격한 발전은 8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윤율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등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탓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은 IT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해, 생산 공정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구조조정을 손쉽게 진행해, 엄청난 이윤을 축적해 왔다. 그것은 결국 ICT를 전세계적으로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보장해 주는 유용한 도구로,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해 주는 수단으로 전락하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ICT가 이전에 가능하지 않던 기술적 한계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면서, 기술결정론적 가치관의 영향력을 드높여주었는데, 이는 ICT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보장받도록 만들어, 기술의 발전 이면에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은폐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따라서 ICT는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허상을 유포하는 도구로만 인식되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정의로운 기능을 발휘할 것 같지 않다. 또한 경제적 수준에 따라 접근성이 결정되고, 20대 비장애인 남성의 기준에 맞춰 설계되는 ICT 때문에 그렇지 않은 계층에게 접근조차도 어렵게 만들고 있는 ICT는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보접근권에 대한 문제를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의 현상

장애인의 정보 접근 수준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0년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장애인가구의 PC 보유율은 6.3%인데 반해, 비장애인 가구는 66.0%로 나타나고 있고, 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 역시 장애인 6.9%, 비장애인 37.1%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PC 및 인터넷을 각각 10분의 1, 6분의 1 수준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정보 접근에서의 격차는 학력, 직업, 소득, 성, 연령 등 사회경제적 및 인구학적 요인들에 의해 비롯된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의 50%에 육박하고 있고, 30%이상이 실업 상태에 처해 있으며, 일하는 장애인 중 50% 이상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종사할 정도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다. 정보접근 수준과 사회경제적 수준과의 관계가 비례한다는 기존의 자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의 정보접근 수준은 단순한 자료 비교를 통해서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보통신기기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아, 이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장애인의 정보 접근 수준을 더 나쁘게 만든다. 가령, 인터넷의 경우, 더 많은 그래픽적 요소가 추가되면서, 음성출력장치(가라사대 등의 하드웨어 또는 TTS등의 소프트웨어)등을 이용해 텍스트를 인식하며 인터넷의 정보를 획득했던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볼마우스 및 터치스크린 등 입력장치의 불편함 때문에 뇌병변 및 지체 장애 때문에 손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은 정보통신기기의 접근이 입력 과정에서부터 차단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설계해 놓은 정보통신기기들은 이에 익숙한 계층에게는 더할 것 없이 편리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목적하는 정보를 획득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은 많은 신체적 활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이것에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에게는 의미없는 기기로만 인식된다.
장애인의 정보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장비의 물리적 접근(physical access to equipment), 조작적 적합성(operational suitability)이라는 용어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장비의 물리적 접근은 충분한 양의 장비와 서비스를 적절한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고, 조작적 적합성은 정보기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나타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적 접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지칭한다. 이중 장비의 물리적 접근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되는데, 정보사회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평등하게 정보통신기기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들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속한 계층은 이를 쉽고 편리하게 활용하지 못한다. 특히 정보통신기기가 대부분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된 장비이기 때문에, 정보복지의 관점에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원천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소득 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장애인은 그러한 정보기기를 쉽게 구입해 사용하지 못한다. 그것은 장애인이 원하는 정보를 언제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조작적 적합성이라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사용하고자 하는 정보통신기기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목적하는 정보를 제대로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를 가리킨다. 특히 시각, 청각, 뇌병변, 지체, 정신지체 등 장애유형에 맞는 정보통신기기의 개발이 연구초기부터 고려되지 않아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적 측면 모두에서 접근불가능성(inaccessibility)을 초래하고 있다.

정보경제가 아닌 정보복지로

많은 장애인들은 정보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해 원하는 정보를 언제나 이용할 수 없다. 이미 장애인들은 사회구조적으로 가장 열악한 지위에 처해 있다. 이는 최근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동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해 그 어떠한 사회적 권리도 누리지 못하여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의 한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처럼 보이는 정보사회에서도 쉽게 극복될 것 같지 않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들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정보경제라는 용어를 통해 정보사회를 더욱 진전되도록 노력하려는 정부의 입장이 정보복지 즉, 정보불평등 계층에 대한 고려를 통해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려는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장애인에게 정보사회는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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