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북마크
이 사람들은 뭘 해먹고 살까?
한기용 외, <프로그래머 그들만의 이야기>, 영진닷컴, 2003

윤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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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정보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임에도 정보통신과 관련한 전문용어가 나오면 매우 난처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컴퓨터를 만지는 수준이라는 것이 기껏 ‘컴맹’ 수준을 겨우 탈피한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메일 보내면 며칠만에 도착하나?”라고 묻던 은사를 보면서 낄낄거리던 후배들 틈에 묻혀 실소를 하던 나 역시 이메일을 쓰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고, 그 때까지만 해도 워드작업 중에 컴퓨터가 다운되기라도 하면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것인 줄 알고 안절부절하던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이후에 컴퓨터를 나름대로 공부해 보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관련 용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거의 외계어 수준이다.

다른 사람들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보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부럽고 신기할 수 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컴퓨터 공학도의 작업은 그래서 항상 흥미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흥미는 있어도 접근하기에는 왠지 부담스러운 그런 분야기도 하다. 그런데 항상 그놈의 흥미가 문제다. 개인적으로 부딪치는 일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업무상의 이유도 있지만, 도대체 이 사람들의 뇌 구조는 어떻게 생긴걸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측면의 호기심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데, 이게 항상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어쨌건 궁금한 것은 풀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잡은 책이 <프로그래머 그들만의 이야기>(이하 <이야기>)이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서는 정보인권이나 과학도의 사회적 책임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IT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뜨악하게 보면 성공한 프로그래머들의 전문분야에 한정된 회고 정도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용 역시 어떤 분야의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식으로 엮여 있다. 전공서적과는 달리 처음 시작할 때의 부담은 그래서 조금 줄어들기도 한다.

<이야기>는 IT 전반에 대한 개관으로부터 게임, 모바일, 데이터베이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프로그래머들의 역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의 특징으로 인해 글도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서 집필하고 있다. 따라서 각 장의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같은 형식의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다양한 분야별 지식을 선사한다. 또한 사업의 형태에 따라 고려되어야할 특별한 사항들과 필자 자신의 경험들을 사례로 결합시켜 설명함으로서 해당사업의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웹페이지를 구상할 경우에는 단말기와 브라우저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하고 따라서 단말기에 맞게 웹페이지를 구상하는 것이 서비스 속도 향상과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이 그것이다.

각각의 프로그램 개발의 특성이 독특하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필자들의 논의 속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과거의 시행착오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라는 것, 둘째, 개발과정에서 검토될 수 있는 변수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려하라는 것, 셋째, 변화해 가는 IT 산업의 현상을 항상 관찰하라는 것, 넷째, 관련기술분야의 전문가들과 항상 교류하라는 것 등을 후발주자들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IT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들이다. 공학도들이 쓴 글이다 보니 문장 자체가 상당히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만연체로 얽히고 설킨 사회과학서적들의 문장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독자에게 제공할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고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어차피 이 책의 기획이 성공하는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일종의 처방에 목적을 두었다면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프로그래머들의 활동들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인 정보인권의 침해에 대한 고민을 별도로 해야한다는 부담이 발생한다.
게다가 겨우 ‘컴맹’을 탈출한 사람들에게는 갈피갈피마다 돌출하는 ‘외계어’들 때문에 주눅이 잔뜩 들어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과도한 흥미의 대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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