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표지이야기 [웹을 자유롭게 하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동권을 보장하라!
비장애인을 위한 화려한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환경… 장애인을 거부한다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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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게 서울 거리는 맘놓고 자유롭게 돌아다닐만한 공간이 아니다. 곳곳에 놓여져 있는 육교와 지하도, 그리고 도로의 높은 턱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8차선 도로를 점거하거나,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철 철로에 뛰어들며 ‘장애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장애인에게 한가닥 희망이 될 수 있는가? 몸은 자유스럽지 않지만 사이버 공간의 또 다른 자아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아쉽게도 사이버 공간마저 장애인에게는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날로 화려해지는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환경은 시각·청각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일 뿐이다.

실제로 2003년 정보문화진흥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러 장애 유형 중에 특히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이 웹사이트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불편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은 있어도 배려가 없으면 무용지물
‘장애인들은 그들의 신체적 장애 때문에 인터넷 활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일반적인 오해이다. 장애인들의 컴퓨터 사용을 도와주는 기술적 장치들 -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를 소리로 들려주는 ‘스크린리더’나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조금만 움직여도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들 - 은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웹사이트가 이러한 보장기구를 지원하도록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에 포함된 이미지에는 이것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동일한 의미를 갖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이는 IMG 태그의 ALT 라는 옵션을 통해 가능한데, 이 옵션을 사용하지 않아도 웹사이트를 구현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에 ALT 옵션을 붙여주는 귀찮은 작업을 방기하기 쉽상이다) 혹은 프레임을 사용할 경우에는 각 프레임의 제목과 프레임 사이의 연관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거나,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 페이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누구나 차별 없이 웹사이트의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웹사이트가 어떠한 원칙을 갖고 설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역시 이미 나와있다. 웹과 관련한 국제 표준을 정하는 국제조직인 W3C에서는 웹콘텐츠접근성지침(Web Contents Accessibility Guidelines, WCAG)을 만들었는데, 현재 버젼 2.0까지 발표된 상태이다.(WCAG 1.0은 http://www.w3.org/TR/WCAG10/ 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재활법 508조를 통해 연방정부나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혹은 정부와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의 홈페이지의 경우에도 지나친 부담이 되지 않는 한, 사용하는 기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장애인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웹접근성 지침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2월 ‘장애인·노인 등의 정보통신 접근성 향상을 위한 권장지침’을 발표한 바가 있으며, 현재 ‘정보통신접근성향상표준화포럼(http://www.iabf.or.kr/)’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웹에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이다. 비장애인 웹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웹사이트의 어떠한 요소가 장애인들에게 장벽이 되고 있는지 거의 느끼지 못한다. 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웹개발자들 중 약 26%만이 웹접근성의 개념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약 15%만이 W3C의 웹콘텐츠접근성지침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 11.7%만이 실제 웹사이트를 설계할 때 장애인의 사용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정부 및 공공기관 홈페이지의 웹접근성 수준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웹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웹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적인 강제가 필요하며, 이것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웹개발자에 대한 교육 및 캠페인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홈페이지는 접근성에 최악입니다’
웹접근성의 문제나 웹콘텐츠접근성지침 등이 장애인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웹 검색을 하면서 ‘이 홈페이지는 X 브라우저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문구가 없더라도 당장 네트스케이프를 이용해 웹사이트를 돌아다녀 보라. 그러면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특정한 웹브라우저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애니 브라우저(Any Browser) 캠페인은 특정한 브라우저에 종속되지 않는 웹 문서를 제공하여, 정보 소통의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시작한 버스타인(Cari D. Burstein)은 ‘접근가능한 웹사이트 제작 지침(Accessible Site Design Guide)’을 제시하며, 모두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개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http://www.anybrowser.org/campaign).

언제나 촉박한 웹사이트 제작 일정 속에서 모든 브라우저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일은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개별 웹사이트 제작자에게 책임이 있다기 보다는 효율성과 성과에 급급한 사회 구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없이 주류를 따라야 정상으로 보는 사회 의식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이버 공간의 벽을 허무는 작업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웹 사이트에 ‘이 사이트는 X라는 브라우저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라는 표시를 하였다면 그것은 웹 등장 이전의 시절, 즉 다른 컴퓨터에서 또는 다른 워드 프로세서, 다른 네트워크 상에서 작성한 문서를 읽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던 나빴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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