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사람들@넷
“민중가요는 어른들이 부르는 동요”
노래로 가꾸는 희망의 숲 ‘송앤라이프’ 윤민석

김창균  
조회수: 4127 / 추천: 52
80년대 ‘전대협 진군가’, ‘반미출정가’, 90년대 ‘서울에서 평양까지’, 2000년대 ‘경의선 타고’. 집회와 시위현장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집결하게 만들었던 노래들이다. 엄혹했던 80년대를 넘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집회와 시위에는 끊임없이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다. 울화통이 치밀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주던 민중가요 뒤에는 묵묵히 활동하는 작곡가 윤민석씨가 있다.

악보 한 장에서... 이제는 MP3로
지난 2001년 12월경 윤민석씨는 ‘송앤라이프’라는 민중가요 사이트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학교로, 악보나 기껏해야 테이프 한 장으로 전해지던 민중가요를 빠르게,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윤민석씨는 “상업적 유통구조 속에서 자본을 확보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인터넷을 통해 MP3로 민중가요를 전하는 것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며 송앤라이프 설립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민중가요의 특성상 시의성을 생각해 볼 때도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송앤라이프를 통해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노래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Fucking U.S.A’,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캐럴모음’ 등이 대표적이다.

Fucking U.S.A는 솔트레이트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안톤 오너 선수에 의해 금메달을 강탈당한 사건에 분노했던 네티즌들의 마음을 대변한 곡이다. 이 노래는 현재까지 조회수가 14만이 넘었으며, 당시 휴대폰 벨소리로 다운받아 다닐 정도로 큰 인기몰이를 했었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비리를 폭로한 곡이다. 이 노래로 윤씨는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의해 고소를 당했고, 결국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만원을 물었다.

최근에 발표된 곡 중에는 작년 성탄절을 맞아 발표하여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일으킨 캐럴모음이 있다. 캐럴 7곡을 개사해서 재벌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윤민석씨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을 주의 깊게 본다.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집회나 시위현장에 가서 대중들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대중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자신의 노래에 담아낸다. “대중주의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중의 이해와 욕구를 따라 코드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윤민석씨의 생각이다.

지하 작업실에서 빛이 들어오는 작업실로
그는 송앤라이프를 열고 나서 1년여 동안은 노래를 만드는 데에만 전념했다. 힘들면 힘든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지내면서, 1주일에 한 곡씩 업데이트 할 정도로 고된 작업을 계속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03년 7월말부터 3차례, 작업실이 침수 당하면서 그나마 근근히 이어오던 사무실 문을 닫았다. 이전에도 몇 번 침수를 당했지만 큰 피해가 없어 선풍기나 난로로 말려가면서 사무실을 운영해 왔었다.

침수 후, 사무실 복구를 위해 처음에는 몇몇 지인들을 찾아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다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는 고민 끝에 3만8천 여명의 일반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후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덕분에 침침하고 쾌쾌한 냄새가 나던 지하 작업실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3층에 작업실을 옮길 수 있었다. “빛이 너무 밝아 커텐으로 빛을 막는 사치스런 고민을 한다”는 말로 자신의 소박한 행복을 표현했다.

“양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삶의 맛을 버릴 수가 없다.”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아기 분유 값에 한숨쉬며 1천 원에 아쉬워하면서도 이짓(?)을 그만 두지 않는 이유는 학생운동을 통해 맛본 삶의 참맛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서 사람이 됐다. 아니 조금씩 돼가고 있다. 양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삶의 맛을 버릴 수가 없다.”

윤민석씨에게 힘을 주는 것은 94년생 어린 친구부터 70세가 넘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격려 메일들이다.

“민중가요는 어른들이 부르는 동요”라며,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의 마음처럼 민중가요를 부르며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그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잘못된 처세가 현명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상식이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과거의 역사 때문”이라며, 오히려 이러한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고 잘못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1984년에 한양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그는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서 보내준 학교에서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한다”며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향해 욕지거리를 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다방 디제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접하게 된 80년 광주의 사진 한 장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감옥에도 수 차례 갔다 온 그는 아직도 먼저 세상을 떠나간 열사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종철이나 문목사나 (김)남주형에게 미안하다. 그들의 뜻을 이어가며 살겠다는 마음속의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이 그들에 대한 최선의 예우라고 생각한다.”

“똥물 묻힐 각오를 한다”
윤민석씨는 “송앤라이프 후원회원만으로는 재정을 담당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민중가요판에서 살아남고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는 “똥물 묻힐 각오를 한다”며 돈 만드는 구조에 대해서 최근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민중가요판의 중심에 있던 윤민석. 그는 또 어떤 노래로 우리들의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줄까 기대해 본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