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게임
롤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 - 검과 마법의 세계로의 여행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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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달에 잠깐 소개했던 ‘로드 브리티쉬’ 리차드 게리엇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써볼까 했는데, 그를 설명하기에 앞서 롤 플레잉 게임(이하 RPG)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에 한국에 살면서 RPG를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잘 모르신다구요? 그럼 최소한 <리니지>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바로 이 <리니지>가 RPG라는 장르의 게임입니다. 사실 저도 <리니지>를 해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런 게임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분이라면 RPG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도 있겠네요.

보드게임으로부터 시작된 RPG
RPG의 역사는 40-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보드게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게임마스터가 설명해주는 룰북(게임 방식을 정의하고 설명한 책)에 따라 움직이면서 게임을 즐겼고, 이것을 TRPG(Tabletalk RPG)라고 했습니다.

RPG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도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기 쉬운데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 열광했던 60년대 히피 세대들에 의해 판타지 장르로 새롭게 자리매김 된 것이었지요.

그들은 완벽하고 환상적인 <반지의 제왕>의 세계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탐험하고 싶어했고, 그 욕망을 게임으로 만들어냈습니다. 70년대 초에 등장한 D&D(Dungeons & Dragons, 후에 Advanced D&D로 발전) 룰북이 바로 그런 게임의 시초였지요. 대략 TRPG의 게임 내용을 보자면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게임마스터(이하 GM) : 여러분들은 지금 동굴 앞에 있습니다. 오크 세 마리가 동굴을 지키고 있네요. 어떻게 하실래요?
전사 : 물론 싸워야지. 나는 몸통공격으로 적을 넘어뜨리겠어.
궁수 : 나는 화살을 준비하겠어.
마법사 : 나는 얼음 마법을 사용할테야.
(전사가 주사위를 굴린다)
GM : 전사의 몸통공격이 성공했습니다. 오크 1이 넘어졌습니다. 두 턴 동안 오크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GM이 주사위를 굴린다)
GM : 오크2의 공격이 궁수에게 적중했습니다. 11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게임의 결말은 내가 만든다”
RPG 류의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현재의 컴퓨터용 RPG 게임과 비슷하지 않나요? 사람이 직접 설명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만 뺀다면 말이죠.

히피들은 그저 읽거나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세계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자유도(이상한 단어지만 게임세계에서는 많이 쓰는 용어랍니다)’가 높은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죠. RPG의 원뜻인 Role Play(역할을 맡는다)라는 개념에 충실하다고 할까요?

미지의 세계인 용이 사는 동굴(dungeon)은 그들에게 모험 정신(미국 특유의 도전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을 북돋아주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용 컴퓨터(PC)의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당연히 게임광들 중 몇몇은 RPG를 컴퓨터로 만들어보고자 몇 날 밤을 새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의 결과물은 또 수백 수만 명의 불면증 환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테이블로 모이던 것에서 각자의 PC 앞으로
초기의 컴퓨터용 RPG는 TRPG에서 게임마스터가 하던 역할, 즉 텍스트로 게임 상황을 설명하고 주사위를 대신 굴려주는 역할과 NPC(Non-Player Character)를 움직여주는 일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 게임에 빠져들었고, 사람들은 이제 RPG를 하기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는 대신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됐습니다.
이후 그래픽을 이용한 RPG, 인터넷을 이용하는 MUD(Multi-User Dungeon : 텍스트 기반의 네트워크 게임)가 개발되고, 현재는 <리니지>와 같은 그래픽 기반의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발전하면서, RPG는 이제 한국의 게임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RPG는 ‘높은 자유도와 자발적 참여성’, ‘파티(구성원)의 단합’, 그리고 ‘퀘스트(모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어떤 게임 장르보다도 온라인의 특성에 부합하는 장르인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유명한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가 RPG 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뒷이야기...
1. 의외로 유명한 머드게임은 국내에 많습니다. KAIST에서 개발한 KIT-MUD는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는데요. NASA에서 KAIST로 “당신네 학생이 만든 게임 때문에 우리 개발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대책을 세워달라”고 연락을 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KIT-MUD는 게임이 영문으로 되어있어 초급 게이머가 즐기기에는 좀 힘든 면도 있고 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했던 게임이라 현재는 공식적인 서버가 없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머드게임을 체험해보고 싶으시다면 주데식공원(90년대 중반 유행했던 머드게임 주라기공원을 확장하여 만든 게임입니다 ), http://jura.dnip.net/ 을 추천합니다. 웹페이지에서 설명을 잘 보시고 한번 도전해보세요.
2. 세계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RPG는 넥슨이 만든 ‘바람의 나라’입니다. 거참 놀랍기도 하죠?
3. D&D 기반의 TRPG는 아직도 세계 여기저기의 매니아들이 즐겨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한두 번의 한글판이 절판된 후에는 개정판이 나올 생각을 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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