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PC통신
정보통신을 남과 다르게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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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터넷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보편적 서비스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제가 연재하려고 하는 내용은 지금처럼 정보통신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지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정보통신을 비상업적으로, 진보적으로 이용하고 정보통신의 발전이 가지고 올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15년 전부터 하나하나 자료와 기억을 더듬어 그 때 그 사람들의 흔적으로 조금이라도 복원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혹 이런 단어를 들어보신적이 있나요?

바통모,현철동,찬우물,통신연대….
평화만들기,북소리,대자보….
아니면 아래그림이 무엇을 하는 화면인지 아시나요? 친숙하신가요?

PC통신이 컴퓨터통신의 중심이었던 90년대 중·후반까지 정보통신운동을 이야기하면 풀뿌리운동이었던 사설BBS와 진보적인 동호회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PC통신의 시작은 87년 데이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한메일(H-Mail)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때는 1200bps 모뎀의 값이 40-50만원 선, 통신용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의 값은 30만 원대였고 약 200여만 원이나 하는 16비트용 IBM PC/XT를 이용해야 하는 점을 생각하면 특정집단을 위한 서비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PC통신이 좀더 보편적인 매체로 변화할 수 있었던 힘은 공개소프트웨어의 확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제는 PC통신에서 가장 중요한 모뎀이 89년을 전후로 가격이 매우 낮아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PC통신초기의 선구자들이 1988년 전후에 시도한 일은 한글을 지원하고 다중접속기능을 갖는 전자게시판(BBS)와 통신에뮬레이터를 보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공개소프트웨어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공개 소프트웨어로서 묵현상씨에 의해서 만들어진 리볼트(Revolt of the Empals)나 엠팔게시판(Empal BBS) 등이 역시 그렇습니다. 공개소프트웨어의 보급과 모뎀가격의 하락으로 1989년 초까지 바이트-네트, 달구벌-네트 등 서너 개에 지나지 않던 전자게시판들은 12월에 이르러 드디어 100개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사설BBS가 개인들의 통신수단으로 점차 확대되면서 민간에 의한 민간의 풀뿌리운동(grass root movement)으로 발전하고 여기서 진보적인 정보통신운동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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