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표지이야기 [네트워커·언니네 공동기획‘정보인권과 여성’]
아직도 인터넷 바깥에 있는 ‘그녀들’
여성을 밀어내는 인터넷… 비용, 기술, 온라인성폭력까지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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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알려졌다 싶은 인터넷 게시판마다 ‘역차별’을 주장하는 글들이 쌓여 간다. 왜 국가의 군대 징집에 대한 원성이 여성을 향하게 되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한쪽 성별의 일방적인 입장이 쌓여가는 게시판은 오늘날 여성이 처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 소득의 격차가 정보의 격차
어떤 통계에도 예외가 없다. 여성 이용자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은 남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2003년 12월에 발표한 정보화 실태에서 인터넷 이용률은 남성이 71.7%인데 비해 여성은 59.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8 정도의 수치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간격은 더욱 벌어져 60대의 경우 남성이 10%의 이용률을 보이는 동안 여성은 2.0% 만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왜 모든 통계에서 여성 이용자의 수가 적을까.

상당 부분은 비용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을 위해 개인적으로 지출하는 월평균 비용이 남성의 경우 5,500원인 반면 여성은 2,600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월평균 유료 콘텐츠 지출 비용도 남성(18,600원)이 여성(13,000원)에 비해 많았다. 이것은 소득 수준의 성차에서 기인한 자연스런 결과다. 2003년 9월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63.9에 불과하다.

그러나 격차는 경제적 요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학자들은 컴퓨터 과학기술 자체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과학기술과 수학은 남성의 영역으로 성별화되며 그렇게 양성된 컴퓨터 기술자들에 의해 제작된 게임 등 소프트웨어들은 부지불식간에 남성적 가치를 반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보화 기기의 친숙도 여부가 고용과 인사고과의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오늘날, 남성적 인터페이스는 여성들의 빈곤화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차별의 또다른 이름 ‘온라인 성폭력’
여성들이 인터넷을 떠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온라인 성폭력이다. 온라인 성폭력 실태에 관한 한 조사(이순형, 2000)에 따르면, 채팅과정에서 여성이용자의 58%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원치않는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성적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여성들이 인터넷의 낯선 공간에 접속하는 것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경험을 일부 분야로 제한한다.

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 연구원은 지난 2000년 7월 발표한 글에서 사이버 공간의 성별화가 사이버 공간의 다원적 문화 형성과 해방적 가능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으며 문화파시즘의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 연구원은 사이버 공간이 남성에게 주도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의 남성지배적 문화가 더 강화된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4년이 지난 오늘의 게시판을 들여다 보면 불행한 예언이 적중한 듯 하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의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모색이 부산하다. 그러나 남성주의가 팽배한 게시판 담론을 참여나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은 낯뜨겁다. 사라진 여성을 찾아나서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수잔 헤링은 여성의 공간을 구축하고 여성의 연대를 창출하여 사이버 담론에 적극적으로, 때로는 싸움처럼 참여하라고 격려한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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