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메신저
핸드폰 빈부격차와 세대차이(?)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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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 들어 선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는 세대 차이를 느낀다. 나는 CD플레이어가 없다. MP3플레이어도 PDA도 없다. 내 핸드폰은 액정 스크린이 왜 칼라로 만들었는지 모를 2001년 출시 모델이다.

나는 가난한 한편, TV에서는 ‘몇 십 화음이다, 몇 만 화소다’하며 끊임 없이 광고를 해댄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주고받고 좋은 그림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선물을 한다. 지하철에선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들과 화투를 치고, 길을 걸으며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좋아하는 스타의 뮤직비디오를 핸드폰 안에 소장하고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일정을 핸드폰으로 관리한다.

특히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홈페이지에 바로 올라가는 ‘모블로그’ 서비스나 휴대폰에서 접속하는 모바일 홈페이지 ‘폰피’ 같은 것들은 사실 아직 감도 잘 안 오고 뭔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문화가 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다. 그런 서비스들을 이용하려면 핸드폰도 최신기종이 필요할뿐더러, 하나의 놀이문화로써 그런 서비스들을 향유하는 사람들이어야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문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돈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기업들은 문화를 만들어낸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진 모르겠지만 우린 자꾸 최신형 핸드폰을 사야만 한다. “전화는 전화만 되면 된다”고 주장하던 가난한 나도 핸드폰 매장을 지날 때면 최신형 핸드폰에 눈길이 가곤 한다. 나만 뒤처지고, 나만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문화적 열등감, 소외감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기성세대에서 부를 상징하는 자동차처럼, 핸드폰도 예전엔 프라이드로의 의미가 있었고 지금도 물론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서 문화의 소외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긍정적인 영향과 문화가 있겠지만, 모르긴 해도 돈을 위해 만들어 내는 기술과 서비스에 의해 상업화된 문화는 좀 아리송하다. ‘문화’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후에 사람들이 따라가야만 하는 느낌이다. 그런 ‘문화’가 있을 수 있을까. 놀이 공간, 놀이 문화가 전무하다시피 된 건조한 도시에 사이버 공간과 문화들을 던져 주면서 ‘자, 이것이 요즘 유행인데 너만 모르고 있어. 모두들 이걸 쓴다고’하며 유혹한다.

그러나 어쩌랴. 앞서 말했듯이 나는 40~50만 원을 주고 핸드폰을 살 형편이 못된다. 지금 내 핸드폰은 신기종으로 바꾼 사람들이 쓰지 않게 된 기계를 공짜로 얻은 것이다. 아니면 몇 년전에 나왔던 플립형 핸드폰을 1~2만 원 주고 중고로 사서 쓰곤 한다. 나는 최신형 핸드폰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계속 초창기 모델들을 쓰게 될 것이고, 모바일 문화와 정보에서는 갈수록 소외되고 뒤쳐질 것이다. 이 일이 되풀이되면서 나이까지 들고나면, 그저 세대차이라 부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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